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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화 Jul 15. 2021

이별하는 방법

사랑학개론

'식'이란, 지나간 일에 대해선 매듭을 짓는 시점이고 새로운 일에 대해선 문을 여는 시발점이다.


  사랑의 시작은 어떨까.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의 개시 시기가 있다고 한다고 한다. '우리 사귀자'. '그러자' 이렇게 말이다. 개시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가 선언 후에는 연인 사이가 되는,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개시 선언이 사랑의 고백인지 아니면  '우리 사귀자'라는 말을 통해 정식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사랑의 시작에 남녀가 특별한 선언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만나고, 그러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되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이다. 보슬비를 맞다 보면 어느새 옷이 젖는다. 언제부터 옷이 젖었는지 그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사랑의 시작도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사랑은, 요즘 젊은이들은 개시 선언을 통하여, 옛날에는 선언 없이 시작했다.


  시작은 이런데 사랑의 끝은 어떨까. 사랑의 끝도 선언을 해야 할까. '식'처럼 선언을 해야만 종결이 되고 정리가 되어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별 선언을 하면 통보 받은이나 통보한 이나 서로 가슴 아파한다. 이처럼 가슴 아픈 이별 선언은 왜 할까. 이별 선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연인 사이가 지속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로 연락이 뜸하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멀어져 가는 것 아닐까. 연락해도 아무 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또 그렇게 지내고 세월이 더 흘러 행여 전화라도 하면 그 번호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이런 자연스러운 이별도 있지 않을까. 사랑의 시작이 명확지 않는 옛날 방식으로 이별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경제 얘기를 할 때 경착륙, 연착륙 얘기를 한다. 사실 비행기 착륙에서 나온 말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는 것을 연착륙이라 하고, 약간의 충격을 주며 착륙하는 것을 경착륙이라 한다. 보통은 연착륙을 하지만 뒷 바람이 부는 날씨나 활주로가 미끄러울 때 활주거리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경착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헤어짐도 연착륙을 하면 아픔도 줄이고 이별의 충격도 없을 건데 왜 가슴 아픈 이별 선언의 경착륙을 할까. 역시 '식'이 주는 의미 때문일까. 선언을 기점으로 전과 후를 단절시킴으로 다른 마음가짐을 갖고자 함일까.


  비행기건 경제건 이별이건 경착륙을 하면 충격이 온다. 이별의 경착륙은 약간의 트러블을 수반한다. 이 트러블은 이별을 통보받는 쪽에서 하는 작은 반란이다. 통보를 받는 순간 마음에 분노가 생긴다. 상대의 변심에 의해 이별 통보를 받았다면 분노가 생기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지만, 이 경우에는 증오가 생긴다. 사랑이 10이면 무관심은 0이고, 증오는 -10이다. 사랑했던 만큼 증오가 생긴다. 인위적인 단절 선언으로 인해 증오가 생기고 증오로 인해 가끔 매스컴에 사건 사고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곤 한다. 1964년 당시의 청춘스타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제목대로 떠날 때는 서로가 가슴 아픈 이별 선언을 할 필요가 사실 없다. 그냥 조용히 떠나면 된다. '식'이 없어 자꾸만 미련이 생긴다면 아직 떠날 시기가 아니므로 그땐 떠나지 않으면 되고, '식' 없이도 미련이 없을 때, 그때 떠나면 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선언을 하지 않았는데 상대는 어쩌지? 상대도 듣고 있다. 사랑이 떠나가는 소리를. 그 소리가 들리면, 아프지만 보내주어야 한다. 두 손이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한쪽은 이미 손을 거두었는데 혼자 손을 젓는다고 해서 소리는 나지 않는다. 인연은 여기 까지라며 단념할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쉽지 않지만 빨리 단념하면 할수록 빨리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있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만남보다 이별이 더 소중하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 훗날 직간접적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행사할지 모른다. 선의던 악의던. 절대 원수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 좋은 기억만이 추억으로 남도록 서로 배려해야 한다.


  모닥불이 피다 재를 남기듯 에로스 사랑이란 본래, 설렘으로 왔다가 씁쓸함을 남기는 것이고 기쁘게 왔다가 슬픔을 남기는 것이다. 즐겁게 왔다가 아픔을 남기는 것이 사랑인 것을. 사랑할 때의 설렘과 기쁨과 즐거움도 자신의 것이고, 떠날 때의 씁쓸함과 슬픔과 아픔 역시 자신의 것이다.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임을. 서로가 아픈 이별 선언 말고 이별의 시점이 명확지 않게 떠날 때는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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