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입원을 하면서 생각해 봤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 왜 불친절할까. 특히 병원급의 의사. 물론 간혹, 정말 간혹 병원급에서도 친절한 분이 있고 의원급에서도 불친절한 분이 있지만....
내과로 치료를 받다가 다른 과로 진료과가 바뀌었다. 현재의 병은 이것인데, 이것의 원인은 저것이므로 이것은 내과, 저것은 다른 과. 어찌 아냐고? 친절한 내과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해 주었으니까. 굳이 안 해줘도 되는데 과를 바꾼다면서 병실에 와서 그런다. 물론 그 전에도 회진 시에도 말 다 들어주고 그랬다.
다른 과로 바뀌었다. 이 의사는 설명을 해주고선 가기 바쁘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반쯤 돌린 몸을 다시 돌리고 설명을 해주고선 다시 몸을 돌린다. 회진 시에는 그렇고, 진료실에 불려 갔는데, 거기서는 설명인지 해 놓고선 '가보세요'의 연속이다. 자꾸 질문하면 화낼 것 같다. 그래도 이분은 웃으면서 하니 괜찮은 분이다.
병원 오면 진짜 환자 된다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심장이 자주 오래 눌러져서 평소 약을 먹는 진료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의사와 상담. '그래서 어쩌라고 식이다' '얼마 전 검사를 했는데 다시 검사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지금 먹고 있는 약 밖에 다른 약은 없다.' 등이 결리는데 이것과 심장 눌러지는 것과 상관이 있을까 물으니 여러 신경이 눌러서 그렇겠지요. 웃음도 없다. 정말 AI 스피커가 100배 친절하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의사는 왜 불친절할까.
첫째, 직업병이다. 직장이라고 출근만 하면 찡그린 얼굴들만 본다. 듣는 소리라는 게 전부 여기 아프고 저기 아프다는 소리만 듣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적어도 10년 이상은 되었을 터. 사람 상대로 좋은 말도 아닌데 같은 말을 또 반복해야 한다. 이런 스트레스도 쌓일 것이고, 의료 사고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을터. 그래서 자연히 불친절로 나오지 않을까.
둘째, 경영인이 아니다. 불친절하다고 손님 안 오면 어쩌지 염려하는 개인의원과는 다르다. 대형 병원은 그래도 오게 되어 있다. 이 병원 이사장은 아침에 병실마다 문 열고 다니면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이사장입니다.' 속으로 나는 말한다. 병원 이미지 관리한다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셋째, 우월의식이다. 나는 낫게 하는 기술을(이것을 의술이라 하겠지) 가진 사람이고 당신은 나로 인해 치료를 받고 낫게 되는 사람이다. '나는 갑이고 당신은 을이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식은 의대를 다니면서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자연적으로 습득되었을 것이다. 조인트 까이면서 배운 의술,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코스를 밟은 엘리트 의식. 지금은 돈도 많이 받는 고급 인력이고, 병원문 열기 전 출근해서 병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간호사나 직원들이 자신에게 인사만 하는. 그래서 몸으로 익혀진 의식.
넷째, 인간을 하드웨어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아프면 아픈 곳 도려내면 되고, 찢어지면 기우면 되고. 인간적인 면은 하나 없이 사람을 오직 하드웨어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책상 위 해골 모형을 연필꽂이로 사용하는지 모른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무생물의 하나로 보니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섯째, 공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프다는 것은 알지만 아픈 감정을 공감하기 싫어한다. 친절은 상대와의 공감을 통해 나온다. 아픔을 느끼기에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알지만 느끼지 못하는, 느끼려고 하는 자체를 싫어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여기에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