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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y 17. 2024

먹는 것도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저는 첫아이 둘째 아이 모두 100일 정도까지 모유 수유를 했습니다. 첫째 때는 조리원에서 수유 자세에 대한 것만 전수받았었는데 둘째 때는 전문 간호사님의 모유 수유 교육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모유 수유의 대 원칙은 이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어 할 때마다 먹이기”



태어나자마자 아기의 위장은 엄지손톱만 하고, 100일 정도 됐을 때가 계란 하나 크기 정도라고 합니다. 위장의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먹는 양 또한 적고, 또 그만큼 빨리 소화되어 자주 먹고 자주 배고파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조리원에서는 아이 한 명에게만 달라붙어 그때그때 수유할 수 없으니 분유를 양껏 준다고 했습니다.



분유를 양껏 주면 아기의 위장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고 그건 아기에게 크나큰 부담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산모들에게 '회복도 힘드시겠지만 최대한 그때그때 수유하세요.'라는 것이 교육의 주 메시지였습니다.



@fanny Renaud, Resplash



그래서 저도 이번에는 아기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수유를 해보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모유 수유라는 것이 가슴팍을 확 열어젖혀 척하고 물리면 될 것 같지만 목도 못 가누는 아기와 호흡을 맞추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째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모유 수유였으니까요.



더불어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번데기처럼 감싸고 있는 아기에게 몸을 맞추느라 엄마의 몸은 S자가 되고 맙니다. 아기 또한 자신의 온 에너지를 써서 먹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끝나면 정말 엄마의 가슴이 너덜너덜해집니다.



자세도 불편한 데 수유 텀까지 짧으니 이도 저도 못하고 돌아서면 밥 주고 돌아서면 또 아기 밥 줘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시간이 흐르자 인위적인 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수유 텀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 텀은 제가 원하는 만큼의 길이는 아니었지만 먹는 주체인 아기한테는 가장 편안한 공백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꼴깍꼴깍 젖을 먹고 다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기를 바라봤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며 먹는 것에도 자기만의 속도가 있듯이 세상 모든 일에도 자기만의 속도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mrbrodeur , 출처 Resplash





아무래도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다 보니 저 역시도 ‘빨리’라는 키워드가 참 익숙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닫힘’ 버튼 눌러야 여전히 직성이 풀리니까요. 더불어 '빨리' 성공하게 되면 엄~~~ 청 능력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미지 역시 사람을 조바심 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며 그런 순간들을 자주 마주치곤 합니다. 원고 투고를 하자마자 출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 불과 몇 달 만에 블로그 이웃이나 브런치 구독자가 몇 천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하죠.  



그러나 이제 막 한 모금을 먹을 수 있는 아기에게 한 컵만큼의 양을 주면 얼마나 버거울까요??



버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빨리빨리 나라에서는 다음 스텝 역시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한 모금만 마실 수 있으면 바로 원샷 때리기를 원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아기가 자기의 수유 텀을 자기가 정하듯, 나의 성장에도 내가 소화하며 갈 수 있는 나만의 속도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열심히는 하되, 나만의 속도가 있음을 인지하고 가자! 싶었습니다.



옆집 아기의 수유가 3시간 텀이라고 우리 아기를 꼭 3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듯이 남들의 성장 속도에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도 없다는 것을요.



@kelly sikkema, 출처 Resplash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보며 나도 이제 나만의 무언가를 펼칠 수 있겠다 싶은 순간 둘째가 생겼습니다. 갑작스레 다시 아기 육아를 하게 되면서 다양한 세상에서 보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성장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아기와 수유를 함께 하며 '그래,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어. 지금은 이 정도의 속도로 가는 시기인 거야'  하고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대신 이 시기를 꼭꼭 씹어 내가 소화를 잘 한 뒤에, 마구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오면 그때 더 많은 양을 삼켜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습니다. 너무 급하게 양을 늘려 체하기보다는 저희 아기처럼 충분히 소화시키면서 꾸준히 그리고 건강하게 글을 쓰려합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만의 속도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급하지 않게, 체하지 않게, 남의 속도에 무리하게 맞추지도 말고, 괜스레 기웃거리며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우리의 소화력을 믿어 봅시다. 그래서 남들의 속도가 아닌 우리의 속도로 들쑥날쑥 커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 <반가워, 나의 아기 선생님> 은 매주 금요일 연재 됩니다 :)



여러분만의 속도를 응원하며

오늘도 은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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