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합니다.
먹고, 놀고, 잡니다. 거기에 이따금 싼다가 섞여 있습니다.
초보 엄마 시절, 책에서 얻은 가장 명쾌한 인사이트는 '아기의 먹, 놀, 잠 패턴을 찾아라!'였습니다. 열심히 관찰해 그 패턴을 찾자 육아는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아기는 자고 일어나면 눈을 떠 칭얼댑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합니다. 입 주변으로 손을 댔을 때 내 손을 먹으려고 한다? 그럼 십중팔구 꼬르륵 신호입니다.
먹습니다. 다 먹고 나면 트림을 해야 합니다. 트림을 하기 위해 나의 어깨에 아기의 턱을 기대주면 주변을 구경하며 놉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에게 아직 세상은 흐리기만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흑백 초점책을 보여 줍니다. 비록 흐릿한 세상이지만 아기는 따뜻하고 아늑한 엄마의 품에 안겨 앞으로 계속 살게 될 자기의 공간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겨, 때로는 아기 침대에 누워 세상구경을 하고 놉니다. 빙글빙글 멜로디를 내며 천천히 돌아가는 모빌도 아기의 친구이지요.
한참을 놀다 보면, 이제 잘 시간입니다.
아기는 졸리지만 아직 스스로 자는 법을 모릅니다. 엄마는 자는 방법을 모르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 토닥이며 여러 차례 고군분투합니다.
이렇게 아기가 잠들고 나면 엄마도 잠깐 짬을 내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합니다. 이윽고 다시 아기가 깨면 이 3가지는 똑같이 반복됩니다.
100일 정도가 지나면 이 패턴이 더 명확해지고 시간대도 얼추 비슷해집니다. 설사 시간대가 어긋나더라도 이 패턴은 꽤 오랫동안 비슷하게 흘러가지요.
먹고, 놀고, 잔다.
이 3가지가 반복되는 아기의 일상은 정말 놀랍도록 건강합니다.
출처 Resplash
제 생각엔 다 큰 어른들도 먹고 놀고 자는 이 기본적인 일상이 무너지면 단단했던 삶 역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온갖 스트레스로 위와 장이 불편해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거나
할 일이 태산같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놀지를 못하거나
바쁘다 바빠 잠 못 들게 하는 현대사회와 나를 잡아먹는 걱정 괴물의 등장으로 잠을 푹 자지 못하게 된다든지요.
연극치료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너덜너덜해져 있던 저에게 교수님은 ‘매일 생각나는 음식을 꼭 챙겨서 먹기’를 처방해 주셨습니다.
마음에 숭숭 구멍이 뚫려있는데.... 아니... 왜... 먹으라는 숙제를 내주셨을까..?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좀 알 것 같습니다.
마음에 구멍이 뚫려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가장 원초적인 만족, 바로 음식을 통해 먼저 채워주려 하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맘때는 제가 입맛이 없어 거의 먹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처방을 해내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더불어 최근 읽은 윤홍균 선생님의 <마음 지구력> 책에서도 마음 지구력을 늘리기 위한 3가지 방법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1) 잘 자고.
" 잘 것이냐? 일할 것이냐? 놀 것이냐?"라는 질문을 만났을 때는 그 질문을 지워라.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라.
"내가 지금 '잘 것인가? 아플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구나!" 하고 말이다.
수면 부족이 쌓이면 우리는 아프다가 죽는다.
2) 체력을 기르고. (이 안에 잘 먹기와 잘 움직이기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내가 잘 먹고 있네"라는 자극을 뇌에 주어야 한다.
만족스러운 식사는 에너지를 만들 뿐 아니라 정신적 행복감, 자기 연민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SNS에 자랑할 만한 식사를 하자. 자기가 먹는 음식에 감정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욕구불만이 엉뚱한 충동으로 튄다.
3) 나와 잘 놀고.
놀이를 억압하기만 하면 역풍이 불어닥친다.
지치거나 우울해지거나 엉뚱한 충동의 노예가 된다. 일탈, 외도, 갑질, 일진 놀이, 험담, 따돌림 같은 저급하고 중독적인 악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잠을 자고, 밥을 먹어야 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행복해지고 인간다워진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놀이를 없애는 삶은 인권에도 저촉된다.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서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이 3가지를 강조하시니 먹고, 놀고, 자는 아기의 삶은 건강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습니다.
출처 Resplash
결국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래저래 노력해 봅니다. 손이 많이 가는 아기가 있더라도 계속 노력 중입니다.
- 하나를 먹더라고 대충 아무렇게나 먹지 않는다. 정이 들어간 맛있는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다.
- 책 읽고 커피 마시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매일 확보하여 나랑 논다.
- 잠옷 입고, 필로우 미스트 뿌리고, 수면 시간 이외에는 눕지 않는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누웠을 때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지 않는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엉켜있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그럴 때는 가장 먼저 먹고, 놀고, 자고. 이 세 가지를 찬찬히 시작해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3가지가 원활해지면 매일매일 맑은 표정으로 웃음 짓는 아기처럼 건강한 하루하루가 될 수 있을 거랍니다.
출처 Resplash
* <반가워, 나의 아기 선생님>은 매주 금요일 연재 됩니다 :)
여러분의 먹고, 놀고, 자는 이 3가지가 원할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은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