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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Jan 20. 2022

도서관의 노숙자

노숙인에 대한 나의 편견에 대해

나고야에 온지 1~2년차 정도 되던 어느 날. 핫서방 차 조수석에 앉아 대로를 달리다 신호에 걸려 멈췄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작은 공원이 보였다. 미끄럼틀 같은 어린이 놀이기구가 몇 개 있긴 했지만 주거 지구가 아닌 마루노우치丸の内 도심 한복판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없었다.  


공원과 벤치를 차지한 사람은 노숙자 무리! 모두들 짐보따리 하나, 자전거 한 대, 음료 캔이 가득 든 커다란 투명 비닐 한 묶음을 곁에 두고 앉아 있었다. 때때로 노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캔을 모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신호에 걸린 몇 분도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노숙자를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핫서방에게 물었다. 

"여기 노숙자가 되게 많네?"

"도서관 근처라서 그래. 도서관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화장실도 있잖아."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표지판을 바라보니 '아이치현 도서관愛知県図書館' 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고야와 아이치현 전 지역을 포괄할 만큼 제법 규모 있는 도서관. 도서관을 간다 해도 집 근처 치쿠사쿠千種区나 메이토쿠名東区 도서관으로 갔기 때문에, 집에서 10키로미터나 떨어진 아이치현 도서관과 노숙자의 모습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래 없는 이놈의 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아이치현 도서관은 내가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출 장소가 되었다. 한국 방문이나 해외여행을 하는 대신 일본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극도로 길어졌고, 방 안에 묶인 몸뚱이가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노마드가 되어 노트북 싸들고 나고야 각지의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엔 직원과 다른 손님에게 미안했다. 그렇다고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자니 비싸서 탈이었다. 일본에서 다달이 방 한 칸이나 책상 한 자리 빌리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찾아가기 시작한 곳이 아이치현 도서관. 도서관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아닌가! 나처럼 주머니가 얇아 오피스를 빌리기 부담스러운 사람이 가기 딱 좋은 곳이었다. 하루 일과를 보낸 후 집까지 운동삼아 걸어오기에 좋은 거리이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나는 자동차 창문 밖으로 스쳐가면서 보았던 그 도서관의 단골이 되었다. 


아이치현 도서관은 정말 좋은 곳이다. 가까운 기후 현의 미디어 코스모스 도서관 같은 세련미는 없지만, 치쿠사쿠나 메이토쿠 도서관보다는 예쁘다. 아이치 현청이나 나고야 시약쇼 등 유서 깊은 근대 건축물과  수령 오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어서다. 

개방감이 느껴지는 1~2층은 커다란 통유리 창을 끼고 있는데, 창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보여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초록초록하다.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우리 집 책상에 앉았을 때의 시야 범위가 좁디 좁은 방 한 칸에 그친다면, 아이치현 도서관에 았았을 때의 시야는 조금 더 넓었고 눈에 닿는 색채도 확연히 달랐다. 숲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핫서방은 일터로,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그 초록초록한 도서관을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스쳐가며 보았던 노숙자들도 거의 매일 출근 카드를 찍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바로 내 앞 혹은 곁에 있는 노숙자들이 무척 두렵고 신경쓰였다. 그동안 만나본 노숙인이라곤 빅이슈를 파는 빅판이 전부였으며, 그밖의 노숙인을 가까이에서 접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무경험에서 나온 근거 없는 경계심은 "도서관에서는 왜 노숙자 출입을 안 막지?" 하는 불안과 의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막을만한 이유도 없었다.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는 대상은 '모든 시민'이다. 내가 '외국인' 이라는 특정 사유로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지 않듯, '주거시설을 소유했는지 아닌지의 여부'도 어떤 한 사람이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막을만한 합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노숙자면 재산세도 소득세도 안 낼 텐데, 세금 한 푼 안 내면서 공공 시설엔 왜 들어와?" 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세금을 냈냐 안 냈냐, 누가누가 더 많이 냈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협소한 의미에서의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나 어린이도 공적 공간을 마음껏 이용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세금 납부 여부나 규모로 1등 시민과 3등 시민을 나누어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금 고지서에 찍힌 숫자에 0이 더 붙었냐 덜 붙었냐로 좋은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을 구분하거나,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에 차등을 둘 수 없다. 

세금 분야(?)에서 우리가 진짜로 분노해야 하는 대상은, '직업이나 소득상의 문제로 세금을 적게 낸 사람'이 아니라 '능력이 되면서도 고액의 세금을 고의로 체납하거나 탈루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집이 없다고 해서 책을 읽지 말란 법이 없다! 

집이 있든 없든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출입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공공 시설이란 그런 곳이다. 


일년쯤 이렇게 지내 보니, 노숙자는 말 그대로 '한 곳에 주거가 마련되지 않아 노상에서 생활하는 사람' 이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제적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노숙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각도 있고,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노숙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은 노숙인이기도, 비노숙인이기도 하다. 외국인이기도, 내국인이기도 하다. 나고야 토박이이기도, 외지 사람이기도 하다. '00이기 때문에 00해서 00할 것이다' 하는 생각은, 대부분 진짜 이유라기 보다는 이유를 '찾아', '덧붙여진' 것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날이 한 달, 석 달, 일년으로 길어질수록 노숙자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져 갔다. 따지고 보면 노숙자와 내가 도서관을 찾는 이유도 아주 동일하지 않은가? 바로, '공간'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그 공간을 위해 고정적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나. 

- 비와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싶지만, 그 공간을 위해 고정적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노숙자.


이런 우리에게 도서관은 '시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 편히 오갈 수 있고, 책상과 와이파이와 수도와 냉난방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고마운 장소다. 


도서관은 원래 책 보는 장소가 아니냐고? 도서관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거 아니냐고? 당연히 책도 본다! 

비나 눈이 오거나 덥거나 추워 야외에서 캔을 모으기 어려운 날, 노숙자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다시 한 번 써보자면, 노숙자들은 '한 곳에 주거가 마련되지 않아 노상에서 생활하는 사람' 이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1년간 관찰한 바, 도서관 노숙자의 독서량은 상당하다. 


노숙인이 도서관을 이용해도 괜찮은 이유 또 하나. 

한국에서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의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해서라고 한다. 그러니 노숙인이 다른 장소도 아닌 '도서관'에 들어와 비를 피하고 책을 읽는 건, 사회 전체를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나쁜 일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이미 세계 몇몇 도시 도서관에서는 노숙인이 청결하지 못하다거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지 않고, 그 노숙인이 샤워를 하거나 쉬어갈 수 있도록 오히려 시설을 보충하는 쪽을 택했다. 공공도서관은 책을 보는 장소이지만, 책만 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나고야에 사는 내내 '노숙자 많은 도서관' 으로만 생각했던 그 도서관에 매일 신세를 졌던 올해. 노숙인에 대한 내 편견이 어떠했고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다다랐다. 

우리는 '편견에 맞서 싸운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그 관용구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편견과 맞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또 하나 맞서야 할 것이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이다. 나에 대한 타인의 편견, 타인에 대한 나 자신의 편견 모두가 우리가 해소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다양한 시민들이 오가는 도서관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기 좋은 장소다. 

 

노숙인에게 도서관과 같은 공공 공간을 개방하는 것만이 홈리스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감히 이야기할 입장이 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와서 보니 노숙자도 나와 같은 시민이더라는 것. 집이 없다고 해서 다른 시민에게 딱히 해롭게 굴지 않더라는 것. 도서관의 노숙자가 책을 참 많이 보더라는 것. 잘 생각해보니 그들을 막을 이유가 없더라는 것. 그냥 그런 것들이 문득 생각나서 이 소리 저 소리를 줄줄 써본다.  




서관의 노숙자 (노숙인에 대한 나의 편견에 대해/나고야 아이치현도서관愛知県図書館)

나고야 민&키치의 한량일기 블로그(https://blog.naver.com/talatsao)에 쓴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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