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지 Oct 28. 2023

우리의 오후, 공공의 정원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남편이 말했다. 


"2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끝나고 매일 세 시간은 밖에서 놀게 하자. 이제 한여름처럼 덥지도 않잖아."

"좋기야 좋은데 세 시간씩이나? 나 그러면 오후 시간이 너무 날아가 버려서 일을 못 할 것 같아."

"나는 8시부터 3시까지 일곱 시간이면 일은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다 못 끝내면 밤에 하지 뭐. 민짱은 같이 놀고 싶은 날에만 참가해."

"매일은 힘들어도 평일 중에 이틀이라도 참가할게!"


남편은 매일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갔다. 비가 오는 날은 공원 대신 구립 수영장에 가야 했지만 맑은 날은 언제나 공원이었다. 

그가 아이를 공원에 데려가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에게 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아이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학교에서는 교실 칠판과 교과서를 보고, 집에서는 책, 색종이와 도화지, TV를 본다. 남편은 아이가 좀 더 먼 곳을 보기를 원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나무 꼭대기에 걸터 앉은 새, 저 멀리 풀숲에서 뛰는 곤충들, 호수 중간에서 파닥 날아올랐다가 첨벙 다이빙을 하는 물고기 같은 것들 말이다. 

아이의 놀이가 소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집에 굴러다니는 재활용품이나 목재상에서 산 자투리 나무로 자신이 구상한 것을 실현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만들기가 아무리 좋다 해도 온종일 만들기만 할 수는 없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놀이라고 해 봐야 레고나 점토 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학교에서 빌려 온 책을 읽거나, 하루 한 시간 허용된 유튜브를 보는 것 정도다. 장난감도 영상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싫증이 나는 법. 여기에 대한 해결 방법은 새로운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거나 채널을 무한히 돌리며 자극을 찾는 일이 아닌, 그것들로부터 한 발 떨어져 보는 데에 있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다.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헤이와(平和) 공원은 이름 그대로 평화로운 곳이다. 왜 평화롭냐 하면, 이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망자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헤이와 공원은 한 마디로 공동묘지 옆에 있는 공원이다. 

일본 묘지는 언제나 절 옆에 붙어 있다. 그런데 도심에 위치한 절 마당에 묘지 부지를 무한정 늘릴 수 없으니, 1946년 나고야시는 헤이와공원을 만들어 모든 절의 묘지를 이곳으로 옮기게 했다. 그래서 헤이와공원 묘지 골목골목에는 절 이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이쪽 구역은 이 절, 저쪽 구역은 저 절 하는 식이다. 


"공동묘지 바로 앞에 공원이 있고, 사람들이 텐트 들고 와서 낮잠도 자고 바비큐도 한다고? 심지어 여기가 나고야 벚꽃 명소라고? 공동묘지 앞에서 꽃구경이라니."


9년 전, 내 눈에 비친 헤이와공원 풍경은 기이했다. 일본 사람들은 공동묘지가 무섭지도 않나. <세상에 이런 일이> 제보감으로도 손색없을 것 같았는데, 계속 살다 보니 나도 그 공원에 돗자리 갖고 가서 눕는 인간 +1이 되었다. 

공원을 찾는 다른 사람들 심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이 묘지에 남편 가족들이 있다는 게 좋다. 시뽀가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신 남편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할아버지의할아버지 등 일가친척 모두 이곳에 모셔져 있다. 

설사 귀신이라는 존재가 있다 해도 그 귀신이 증손자 보고 싶어 하는 남편 할머니라고 하면 그럭저럭 환영(?) 할 수 있다. 할머니는 얼마나 편안하실까. 사후의 공간이 인적 드문 오지에 봉인되는 것보다는, 밝고 너른 곳에서 후손과 함께한다면 돌아가실 때 마음도 마냥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가족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 묻힐 것을 알고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언젠가 어딘가에 묻혀야 한다면 그 장소가 이곳이었으면 한다. 생전에 아무런 연이 없는 추모관보다는 남편과의 추억이 있고 아이의 성장이 있는 이곳에 영영 머물고 싶다. 정작 남편은 절대 싫다고, 자기는 티베트에서 조장鳥葬해달라고 하지만 말이다. 

대체 요즘 세상에 어떻게 조장을 할 수 있겠냐고 하니, 정 어려우면 한국에서 수목장을 해달라고 한다. 차가운 비석이 아닌 드넓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요지라고 하면서. 그럼 나는 일본에서 남편 고향에 묻히고 남편은 한국에 가서 나무가 되는 건가? 이게 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 공원을 오가서 그런지 무섭고 안 무섭고의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저 자기 눈앞에서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곤충에만 정신이 팔렸을 뿐이다. 잠자리채와 곤충채집함을 제 몸의 일부처럼 달고 다니는 아이는 요즘 사마귀 잡기에 푹 빠졌다. 상대적으로 쉽게 잡히는 메뚜기에 비해 사마귀는 개체 수도 적고 잡기도 까다롭다. 

바로 그때 등장하는 또래 아동 1.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하지만 사마귀를 잡고 싶은 마음만큼은 서로 잘도 알아본다. 어? 저 멀리서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친구가 뛰어온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니? 하는 안부 인사조차 생략하고 일단 섞이고 본다. "얘들아, 잘 봐. 사마귀는 이런 데에 있어." 친구의 형이 곤충 잡기 기술을 전수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늘어난 어린이들은 즉석에서 사마귀 군단을 결성해 곤충 사냥에 나서고, 진짜로 사마귀라도 잡은 날에는 아주 골이라도 넣은 국가대표처럼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난리를 피운다. 

그렇게 잡힌 사마귀를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집에 갖고 가고 싶어 하고, 부모들은 저마다 됐다고, 절대 안 된다고, 당장 풀어주라고 한다. 얘를 집에 데려가서 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결국 사마귀는 건강히 귀가. 이걸 매일 하는데도 그렇게 재밌나 보다. 


곤충채집함을 내려놓은 아이는 공원 중간에 있는 작은 호수로 달려가 뜰채를 휘휘 저어 민물새우를 건진다. 그런 다음 낚싯바늘에 새우를 꿰어 물고기를 잡는데, 릴을 돌리는 손의 움직임이며 표정이 꽤 진지하다. 

아이 낚싯대는 두 대. 하나는 총각 시절 남편이 "혹시 다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식하고 커플로 써야지" 하면서 20년 전에 사 놓았던 것이라 하고, 다른 한 대는 지난여름 "내 낛싯대는 내가 직접 만들고 싶어!"라고 주장한 아이가 목재상에 가서 나무를 사고, 갈고, 사포질을 하고, 좋아하는 색깔로 색칠까지 해서 완성한 것이다. 

물고기가 잡히면 플라스틱 수조에 넣는다. "어~~~이! 물고기! 겡끼?" 하고 말을 걸어보지만 물고기는 입만 뻐끔거린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만져도 보고 쳐다도 보면서 본인의 <물고기 도감>에 괴발개발 낚시 일지를 쓴다. 그런 다음 물고기도 다시 호수로 돌려보낸다. 


가끔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면 옆자리에서 낚시하던 할아버지들이 한 마리씩 척척 선물해 주기도 하신다. 아이가 실망하거나 속상할까 봐 마음을 써주시는 것이다. 

그럴 때면 저 멀리서 놀던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드는데, 시뽀가 뜰채를 건네며 "우리 같이 새우라도 잡을래?" 하고 물으면 "고마워! 너도 나중에 내 킥보드 타!" 하는 보답이 돌아온다. 킥보드는 때로 연날리기가 되기도, 외발자전거가 되기도, 야구공이나 축구공이 되기도 한다. 역시, 놀이라는 것은 물건을 사들이는 방법이 아닌 친구와 함께 노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게 맞나 보다.


아이가 갑자기 나무 아래를 향해 질주한다. 견주들이 모이는 시간인가 보다. 동네 강아지들도 매일 같은 시간 이 공원을 찾는다. 최시뽀 어린이는 강아지도 없으면서 견주 정모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친해진 강아지들은 아이를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아이도 강아지와 함께 구르고 달린다. 개가 애랑 놀아주고, 애도 개랑 놀아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저기요! 사람 다니는 공원에 개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당신 개는 당신한테나 가족이지! 개가 사람이야?"

"이봐요! 애가 개를 보면서 이쪽으로 오잖아요! 애 교육 좀 잘 하세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에 큰 안도와 감사를 느낀다.

어떤 도시에 대한 애정과 만족도는 그 도시의 빌딩이 얼마나 높은지, 백화점이 얼마나 화려한 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서로에게 우호적일 때 "계속해서 이곳에 있고 싶다" 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이런 헤이와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과 나고야가 경합을 벌이던 시절, 지자체와 기업체들은 어떻게든 국제 행사를 유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시민들이 "올림픽이 열려서는 안 될 일"이라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메인 스타디움으로 예정된 헤이와 공원을 시민과 야생 조류의 휴식처로 보존해야 한다. 도로, 지하철 등의 공공사업이 자치단체 부담을 가중시키고 복지와 교육 예산을 압박한다" (<오륜 유치 공개토론 나고야시·시민 공방>, 동아일보, 1981) 하는 이유에서였다. 


시민들은 전 세계 IOC 위원들에게 나고야에 찬성 표를 주지 말라는 편지를 쓰고, 헤이와 공원에 서식하는 동식물 사진을 찍어 앨범을 제작해 보냈다. 하다 하다 나중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에 11명의 나고야 시민들이 찾아가 반대 운동을 펼쳤다고 하니, 공원이 사라지는 게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나고야시 인권위는 위와는 다른 이유로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1980년대 초 나고야에서는 재일교포의 국적이 일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립학교 교사로 채용하지 않는 사회 문제가 있었다. 인권위는 교사 채용에서 국적을 차별하는 나고야시는 올림픽 같은 세계 행사를 유치할 자질이 없다고 하며,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할 때는 도덕적 자질도 고려하라"라는 내용의 개최 반대 서한을 올림픽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과 같다. 88올림픽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88년생인 나는 생후 8개월에 엄마 등에 업혀 마산에서 서울로 올림픽 구경을 갔으며, 35세인 지금은 아이 손을 잡고 공원을 누리고 있으니 여러모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여기가 올림픽 경기장 될 뻔했다며?"

"어떻게 알았어? 진짜 옛날 얘기다."

"그때 나고야 사람들이 올림픽 위원들한테 보낸 사진에 뭐가 있었는지 알아? 헤이와공원 전경이랑 꽃, 새, 물고기, 그리고 곤충 잡는 어린이들 사진이 있었대."

사진 속에서 곤충 잡던 어린이들은 딱 지금의 남편 나이쯤 되었을까. 내 눈앞에서 사마귀 타령을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그 사진 속 꼬마들과 다를 게 없다.


약속한 세 시간이 지나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생각한다. 공원이라는 장소는 어떤 공간일까, 하고. 

그 어떤 호화로운 주택의 앞뜰 뒤뜰도 공원만 못할 것이다. 공원은 공공公共의 정원庭園. 나만의 정원에서는 가꿀 수 없는 광활한 대지와, 울창한 도시 숲과, 이름 모를 들꽃과 풀벌레와 물고기, 무엇보다도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공의 정원은 커다란 그릇에 우리 모두를 품어 안는다. 그 속에서 아파트 담장 너머의 모든 것들과 마주치고 섞이며 아이도 나도 남편도 도시와의 접점을 넓혀 나간다. 아이의 유년기, 우리의 오후는 이런 모습이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게 멋있어서.
사마귀에 빠져버린 6세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에게 물고기를 나눠주시는 동네 할아버지
우리 집 6세가 직접 잡은 물고기들
매일 열리는 동네 견주 정모에 참석하는 6세
공원에서 보내는 오후의 마무리는 석양 바라보기


이전 02화 남편과 서로 '맞춰 가며' 살지 않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