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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Nov 05. 2023

일본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일본 요리는 잘 못합니다

누구도 잘 해야 된다고 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많이' 하는 것에서 해답을 찾으려던 때가 있었다. 나와 잘 맞는 내 짝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과 연애를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잘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도 여러 현장을 고루 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이주여성과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졸업 전에 여러 단체와 기관을 접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고, 왜인지 결혼이주여성에게 관심이 갔다. 

태국이나 라오스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나라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이 이왕이면 잘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대학 생활과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라고 썼지만 학교는 거의 안 나갔음을 반성합니다 ㅎㅎㅎ)


결혼이주여성이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교수법을 훈련하고 외국어를 배우려는 사람과 연결하는 사회적 기업. 그곳에서 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둥지를 튼 이들과 동료가 되었다. 대학생이던 나와 같은 또래였던 동료들은 이미 아이 둘 셋을 낳아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조부모가 아이를 돌봐주는 동안 일을 하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보통은 근로시간이 보장되고 급여가 따박따박 나오는 공장이나 식당 일을 가지만, 수업 시수가 적더라도 '내 나라말'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 왔다는 이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을 홍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분들께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었다.


내 나라말.


집 밖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모국어를 쓰기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에 살기로 한 이상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혀 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엄마의 모국어와 엄마 나라 문화를 이렇게까지 냉대할 수 있을까? 남편의 가족이나 친척들은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에게 말 거는 것을 미운 눈으로 보았다.

"얘는 한국 애로 클 거다. 한국 애한테는 한국어로 말을 걸어야지 니 나라말을 써서 되겠나?"

"그러다가 학교 가서 공부 못하면 다 엄마 책임이다."

"한국어로 말할 거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마라."

가족들의 목소리는 불호령에 가까웠다.


음식에 대한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말도 마음대로 못 쓰는 마당에 집에서 고향 음식 해먹는 것조차 눈치 보인다는 동료가 많았다. 시부모님과 합가해 사는 집일수록 그랬다. 하루 한 끼는커녕 일주일에 한 끼도 고국 음식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 역시 불호령 폭격 때문이었다.

"냄새가 이게 뭐고? 한국에 와서 살면 음식도 한국 음식을 해먹고, 빨리 한국 사람이 되려고 해야지."

"남편한테 한국 음식을 해줘야 될 일 아니가?"

"김치 만드는 것도 배우고. 반찬도 배우고. 적극적으로 배워야지."

"이 맛있는 걸 왜 못 먹노? 싫어도 일단 입에 넣고 씹어라. 삼켜라. 계속 먹다 보면 좋아진다."


당시 우리네 어르신들은 그렇게 해야지만 멀리서 온 새 식구가 한국에 잘 적응해 살아가리라 믿으셨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배우자로서 동등하게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보다는, 어느 한 쪽이 한국 물 많이 먹고 한국 사람처럼 되는 것을 최선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그 믿음은 너무나도 굳건하여 가족 밖에서도 고루 통용되었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 적응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김치로 소통하기! 김치 만들기 교실'이 빠지지 않았고, 마을 부인회에서는 '한국 요리에 서툰 외국인 엄마와 다문화 가정에 한국 반찬 만들어 갖다 주기' 봉사활동을 했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요즘 네가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뭐니?" 하고 물어봤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뜬금없게도 국제결혼을 한 결혼이주여성이 되었다.


일본으로 오던 해. 요리책 몇 권을 사들고 왔다. 일본 가정식 레시피 북이었다. 내가 왜 일본 요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때 보고 들었던 것들이 기억에 남아 나에게도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문제는 일본 요리책에 흥미를 붙이기 어려웠다는 거였다. 세계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일본 여행을 선호하지 않아서였을까. 분명 한글로 쓰인 책인데도 음식 이름이며 재료명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가쓰오 쯔유, 유자 폰즈, 다이콘 오로시, 참마 토로로.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썩 입맛이 당기지도 않았다. 끈적끈적한 참마를 갈아 넣은 밥 레시피를 보면서는 "핫서방이 이거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도 먹어야 되나? 큰일이다."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핫서방은 나에게 일본 음식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내가 남편에게 일본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니지 않냐는 거였다.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해먹을게. 민짱은 민짱이 제일 잘 하는 음식,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보면 어때?"

그 말과 함께 핫서방은 나고야에 있는 한인 슈퍼를 죄다 털고 다녔다. 큰 규모의 한인타운이나 한인마트가 없고, 재일동포 분들이 운영하는 작디작은 가게가 많은 나고야. 그 가게 하나하나를 다 찾아다니며 '뉴커머(1965년 이후 일본에 정착한 대한민국 국적자를 뜻함. 오래전에 이주하신 재일동포 1~3세 분들이 지켜 온 식문화와 2014년 일본에 온 나의 식문화는 다소 다르다. 이를테면 재일교포 1~2세가 엽떡 신떡을 그리워할 가능성은 낮다.)'인 내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을 구해 왔다.


어느 누구도 '일본 음식 못 하는 한국인 아내와 그의 남편에게 일본 반찬 가져다주기 봉사활동'을 해주지 않았다. '결혼이민자를 위한 일본 간장 만들기'나 '낫또로 소통하기' 같은 수업에 참석시키며 일본 문화를 익히라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불만도 불편도 없었다. 핫서방에게는 손과 발이 있었고, 내가 만들어 보고 싶은 일본 음식이 생기면 그때그때 하나씩 레시피를 늘려가면 될 일이었다.

우리 집 주방에 서는 사람은 때로는 핫서방이기도, 때로는 나이기도 했다. 일본 요리에 자신 있는 사람이 일본 요리를 하고 한국 요리에 자신 있는 사람이 한국 요리를 했다. 하다 하다 남인도 요리를 한다고 설치기까지 했으니, 주방은 온갖 나라 음식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었다.


남편 가족들 반응은 어떨까? 부부 둘만 잘 맞으면 장땡인 걸까?

장땡이었다.


시부모님은 아들의 결혼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아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핫서방의 결혼생활은 핫서방의 영역. 아무리 부모라 해도 아들 집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식탁에 일식이 올라오긴 올라오는지, 외국인 며느리가 일본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특별히 대단한 철학이나 각오가 있어서는 아닌 듯하다. 그냥 두 분 집 냉장고와 식사 메뉴만 생각하기에도 바쁘셔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시부모님께 감사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 살고 있으니 일본화되어라' 같은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저 내가 하는 한국 요리를 같이 맛있게 먹고, 때로는 잘 먹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엽서를 써서 보내주신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을 때도 "너 일본 요리는 좀 늘었니?" 하는 말은 하지 않으신다. 한국 음식에 대한 질문과 칭찬, 감탄만을 화제에 올릴 뿐이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모습. 나를 '이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 2'가 아닌, 함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될 독립적인 개체로 정중하게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시부모님이 좋아짐과 동시에 감사를 느낀다.


그렇다. 국적이 다른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다고 해서 식습관이나 취향을 비롯한 개인의 정체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며, 변화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핫서방과 시부모님은 일본인인 채로, 나는 한국인인 채로. 아이는 두 나라 문화를 동시에 누리며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고 나누며 산다.

일본인 집안에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아닐까? 나는 일방적으로 일본 물을 먹는 방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영받는 방식으로 새로운 나라의 낯선 환경에 적응해 왔다.


작년 어느 날인가 핫서방이 사 온 냉동고도 그런 의미였다. 코로나 탓에 한국에 자주 들어가기 힘들어지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쌓여가던 시기. 예전처럼 한국에 쉽게 오갈 수 있을 때까지 한국 식재료 가득 채워두고 그때그때 먹고 싶은 요리라도 마음껏 먹으라는 거였다.

핫서방도 10년간 해외 생활을 했지만 특별히 일본 음식이 그리웠던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건 자기 경우고 내 식습관이나 취향은 또 다를 수도 있겠다며, 나한텐 냉동고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선물하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단히 크지도 않은 121L의 냉동고를 보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사르르 녹아들었다. 그런 가족들이 있는 나고야는 더 이상 낯선 외국 땅이 아니었다. 내 삶의 따뜻한 터전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이 먹고 싶고 그리워하는 음식이 아닌 '배워서 해야 할 음식' 리스트에 둘러싸인 과거의 동료들이 다시금 생각났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니 많이 달라졌을까? 여행 인구가 늘고 베트남이며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과거보다는 이국 음식이 각광받는 것도 같다. 결혼이주여성이 운영하는 식당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가족 안팎에서는 여전히 한국 문화를 학습하고 흡수되어야 할 존재로 남아있는 듯하다.

최근 보도를 보면 한 지자체에서 결혼이주여성을 돕는다며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요리 교육을 통해 식생활 차이를 이해하고 한국요리를 익히며 한국 사회에 자신감 있게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좋아 보이는 말이지만 여전히 일방향적이고 동화주의적이다.


결혼이주여성이 끼니를 거르는 비율이 40%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중 절반가량이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이해가 간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맛있는 '끈적끈적 참마 덮밥'이 누군가에게는 한 숟가락도 뜨기 힘든 음식일 수 있다. 보도에 나온 여성은 본인이 김치찌개를 먹지 못하면서도 매일 김치찌개를 끓인다고 했다. 자신을 위한 요리는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또 '요리 교육'을 내세웠다. 한국 음식문화와 요리법에 대한 강의를 제공하며 떡갈비와 부침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보건소장은 "동남아 등지의 음식을 고집하는 경우에 영양불균형이 올 수 있습니다. 짠 것에만 익숙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만성질환에 노출될 수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다시금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


나고야 시가 나에게 "외국에서 오셨으니 일본 요리를 익히며 일본 사회에 자신감 있게 적응하셔야죠. 그것이 사회 통합이고 소통입니다."라고 한다면?

일본 음식이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아 차라리 굶고 싶을 때, 보건소에서 호출해 "일본 요리 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보건소장이 "한국 등지의 음식을 고집하는 경우에 영양 불균형이 올 수 있습니다. 매운 것에만 익숙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만성질환에 노출될 수가 있습니다."라고 하며, 함바그와 오코노미야키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결혼이주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일까,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일까.


단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음식만 해도 이렇게 할 말이 많다는 쪽에 가깝다. 가정화합이며 사회통합, 소통, 적응은 어느 한쪽이 자기 자신을 갈아 없애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보존하고 살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불러앉혀 떡갈비 부침개를 가르치기 전에 "네가 좋아하는 건 뭐니?" 하고 묻고 "그것참 맛있겠구나. 나도 궁금하다."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결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 온 사람들이 동화의 대상이 아닌 교류의 대상이 되길. 가족에서든 사회에서든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다운 모습으로 제 자리를 찾아 뿌리내리길.

이민자의 삶을 살아 보니 그때 그 동료들이 생각나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다른 좋은 방법도 있는데' 하는 아쉬움에 글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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