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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Oct 21. 2023

남편과 서로 '맞춰 가며' 살지 않기로 했다

너와 나를 지키며 그려가는 관계의 등고선

'부부는 맞추어 가면서 산다', '맞추면서 사는 게 부부다' 하는 말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인이 파트너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결혼 10년이 안 된 우리로서는 이 '맞춘다'라는 말은 어딘지 막연하고 또 어렵게 느껴진다. 


- 파트너에게 어디까지 맞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 나는 그에게 얼마만큼 맞출 수 있는가??

- 그는 최선을 다해서 맞춘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런 경우 상대에게 "더 맞춰달라"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와 같은 질문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파트너뿐만이 아닌,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서 '최소한 이 정도는 맞춰 줘야지'하는 기준과, '이 정도는 수용해 줄 수 있어'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맞추는 정도가 크다고 해서 꼭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고, 많이 맞춘다고 반드시 나은 관계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만약 내 파트너가 '네가 하라는 대로 다 맞출게' 하는 타입이라면? 안타깝고 안쓰러울 것 같다. 그가 그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떠나 다른 사람을 파트너로 맞이한대도 그렇다. 상대방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마냥 맞추다가는 자신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그의 삶은 '파트너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지는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이 정도는 꼭 지켜달라" 하고 요구할 줄 알고, 나에게도 필요 이상의 권한을 휘두르지 않으며 "그 정도는 꼭 지켜줄게" 하는 사람과 함께 관계의 등고선을 그려 나가고 싶다. 


맞추는 정도를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커플과 비교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내 전 남자친구는 나한테 50만큼을 맞춰줬는데, 너는 왜 나한테 20만 맞춰줘?", "남들은 평균적으로 100을 맞추며 사는데 우리는 왜 50밖에 못 맞추냐? 우리도 더 맞추자." 같은 말은 의미가 없다. 사람마다 지키고 싶은 영역과 맞출 수 있는 영역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과 파트너가 되느냐에 따라서 '안 맞춰나가도 되는 부분'이 '맞춰줘야만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해서다. 


가령 매일 아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런 습관이자 취향이 똑같이 커피를 사랑하는 A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공감과 교감을 키우는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다. "오늘 마신 커피 어땠어?", "주말에는 같이 가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경제관념이 투철한 B라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 "자기야, 카페라떼 효과라고 들어봤어? 매일 커피 사 마시는 데 쓰는 돈을 차곡차곡 모으면 나중에 큰 자산이 된대. 나 요즘 시드머니 만드느라 용돈 아껴 쓰는 거 알지? 자기도 카페 가는 횟수 좀 줄여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경제 공동체잖아." 한다면, B가 생각하는 '경제 공동체'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양보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생활 방식부터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양가 방문 횟수, 역할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정도, 정치 경제 종교관까지. 맞추기를 요구하거나 요구당하는 일은 참 많다. 

상대가 요구하는 것이 내가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약간의 노력만으로 협의 가능한 정도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내가 지키고 싶은 영역마저 '맞춰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어떨까?  


이런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하며 핫서방과 나는 골똘한 고민에 빠졌다. 파트너 사이에서 중요한 것이 정말 '맞춰가는 것'일까 하고. 핫서방과 심야 대토론을 한 끝에 우리의 결론은 엉뚱한 곳으로 튀어갔다. '맞추며' 살지 말고, '지켜주며' 살자고. 두 개인의 세계를 하나로 합치려 들지 말고, 두 개인이 두 세계를 지니고 나란히 살아가자고 말이다. 


남편과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대화는 이랬다.




- 핫서방 : 민짱은 일본 여행보다는 인도나 이집트 여행을 더 좋아했잖아. 외국인이랑 결혼한다면 일본인보다는 인도인이나 이집트인과 결혼할 확률이 더 높지 않았어? 


- 나 : 그러네. 집에서도 '쟤가 외국인 사윗감을 데려온다면 인도인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을걸?


- 핫서방 : 그랬으면 어땠을까? 한국 일본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권이 완전히 다르잖아. 


- 나 : 두 나라 모두 종교적인 나라니까. 힌두교인이든 이슬람교인이든 불교도이든 시크교도이든 기독교인이든 종교를 기반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여행자로서는 그게 매력적이었던 거지. 시선이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니까.

예를 들어서 해가 뜨는 하나의 장면을 보고도 종교가 없는 나는 "자연 현상이네"라고 생각하지만, 삶의 기반을 종교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신의 은총이자 영광"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새로운 관점을 접해보는 게 좋더라고. 그런데 이 정도로 시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맞추는'게 가능한 걸까? 


- 핫서방 : 맞아. 어떻게 맞추지? 서로 사랑은 하지만 자기와는 다른 세계를 지닌 사람한테 "해가 뜨고 신의 은총이 비추네. 어서 고개를 숙이고 신께 인사를 드려"라고 할 수는 없지. 반대로, "뭐야, 해를 보고 왜 절을 하고 그래? 지구과학 안 배웠어?"라고 하면 그것도 기분 나쁘겠다. 


- 나 : 조금씩 양보해서 중간 지점을 찾을 수도 없어. 격일제로 공평하게 하루는 해에게 절을 하고, 하루는 '음 지구가 회전했군' 하기로 합의를 보는 것도 너무 기계적이잖아? 둘 다 맞춘다고 맞추지만 둘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방식인데?




이런 세계관 차이는 꼭 먼 나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세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얼마나 '맞출'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맞추어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차라리 지켜줘야 한다"이다. 지킨다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너는 해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부부도 그렇다. 남편에게는 남편의 세계가, 나에게는 나의 세계가 있다. 남편이 구축해 온 그의 세계가 나를 파트너로 맞이함으로써 '양보와 배려로 맞추어야 하는 무언가'가 되는 것은 달갑지 않다. 다른 파트너를 만났으면 제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고유한 세계를,  '나한테 맞추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있는 힘껏 지켜주고 싶다.


맞추는 거나 지키는 거나 말장난일 뿐 그게 그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양보와 배려의 마음이 있다는 건 동일하니까. 하지만 '내가 너한테 맞춰줄게' 하는 태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자 어딘지 시혜적인 느낌이라면, '내가 너를 지켜줄게' 하는 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이 든다.

더해서, 내가 꼭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상대에게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한테는 아침 커피 한 잔이 아주 중요하니까 그 정도는 지켜주면 좋겠어. 우리가 정말 경제 공동체라면, 내가 생각하는 소비관도 반영해 주어야 하지 않겠니?" 하고. 


그러니 우리의 관계를 지속해가는 핵심은 서로의 다름을 '얼마나 맞출 수 있느냐'가 아닌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느냐'에 있다는 이야기. 

맞추려는 태도를 넘어 지키려는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 기억나는 신혼여행 에피소드 하나

허니문 첫 도시 런던. 둘 다 '켄싱턴 공원에 있는 오린저리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라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나는 그 식당에서 애프터눈 티를 하고 싶었고 

핫서방은 달다구리는 한 입 이상 먹지 못하는 인간이라 애프터눈 티 이름만 들어도 괴로워했다.  

그래서 같은 식당에서 마주 본 채 1인은 애프터눈 티를, 다른 1인은 칼질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 ㅋㅋㅋ

우리 신혼여행 때부터 그러고 다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난다. 


'그래도'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직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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