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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 Oct 30. 2020

두아이와 헌집

Fuji Naturaclassica + AGFA vista 200/400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밭에는 배양실이 있었다. 방안 가득 선반들이 있었고 선반들을 가득 채운 유리 플라스크들에는 정확히 알수없는 식물들의 새싹들이 배양되고 있었다. 난 이었던가 바나나 였던가. 배양실의 온도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되고 소음이 전혀 없어서 혼자 들어가 있는걸 좋아했었다.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아빠 엄마를 기다리던 그 어린이는 지금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그 배양실에서 살고 있다. 결혼하기 1년 전쯤부터 혼자 살기 시작해서 식구가 한명씩 늘어가는 (배양실은 배양실이구나.) 식구가 배양되어가는 우리집. 

중간에 쓰임새가 여러차례 변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달까.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아빠는 '거기서 이렇게 오래 살줄은 몰랐다.' 하겠지.





어릴때 살던 시골집느낌이 난다며 남편이 나보다 이 집을 더 좋아한다. 나는 나름 도심(서귀포 시내)에서 줄곧 살다 왔기때문에 불편한점이 많다. 첫번째로 계절마다 온갖 해충들이 종류별로 나타난다. 봄 여름 가을까지 지네, 모기, 바퀴벌레들이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다 그들이 한가해 지는 겨울이 되면 쥐 가족들이 지붕에서 소란스럽다. 두번째로는 집이 작다. 혼자살기엔 충분했고 훌륭했다. 결혼할때 가져온짐이 캐리어 두개뿐인 남편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넷은 좀.. 



고인돌 가족 제주플린스톤



살림살이를 최소한으로 하고도 비우고 비우며 네가족이 부대껴 좁건 어쨌건 잘 살고 있는중이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잘 살아지는 거구나 하면서. 갖고 싶은것도 많고 갖고 있는것도 많았던 내가 나의 것을 버리는일에도 익숙해 졌다. 집에 많은것이 없지만 한 예로 청소기를 두지않아서 아이들이 남의 집에서 청소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식겁하고 울면서 달려와 매달린다. 그런 웃지못할 일들도 일어난다. 요즘은 작은 무선청소기가 많이 나오니까 하나 살까도 고민했지만 없이도 잘 지냈는데 이제와서..생긴다면 청소보다는 아이들 훈육용으로 쓰이겠지.



우리집 / 집앞으로 보이는 엄마의 정원과 집 그리고 귤밭


엄마가 집을 지어 밭으로 이사를 오면서 자연스레? 구렁이 담넘어가듯 작은집인 배양실이 작은딸 차지가 되었는데 작은딸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사는거냐며. 작은딸 본인도 모른다는 풀리지 않는 인생숙제다. 이민이냐 이사냐. 아파트냐 주택이냐. 월세냐 전세냐 매매냐. 뭐이렇게 고민할게 많은건지. 밖에나가 풍경들을 하나 하나 보고 있자면 이런곳에 사는 나는 꽤 행복한 사람, 우린 꽤 행복한 가족인데. 내가 덫을 놓지않는다면 윗집의 쥐 가족도 꽤 행복할 그런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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