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강풍과 한파로 깬 우리는 계속 아이슬란드 링 로드의 남쪽을 따라 여행했다. 날씨는 청명했고, 어제 모두에게 너무 추운 하루였던 탓인지 약간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폭포들이 군데군데 보였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수량이 상당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위에는 고원들이 있고, 그곳에서 계속 물들이 모이겠지. 고원으로 올라가는 건 4륜구동 차 일부만, 일부 도로에 한해 올라갈 수가 있고 이 또한 대부분 눈 등으로 겨울에는 접근이 막혀 있었다. 우리는 애초에 4륜구동 차가 아니므로 오프로드 진입은 불가했는데, 그나마 타이어가 스노우타이어로 미끄러워 보이는 곳도 많이 미끌리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폭포들 중 한 곳 앞에서 무지개가 선명하게 생겼다. 물보라가 많이 일어나니 무지개가 쉬이 생기긴 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선명한 무지개는 오랜만이라 반갑고 신기했다. 사실 아는 자연 현상들이더라도 항상 보는 것이 아닌 것들은 신기하고 좋은 법이다. 우리는 캠핑 의자를 꺼내어 아주 잠시 커피를 마시며, 폭포에서 바다로 둥둥 떠 가는 얼음 조각들과, 폭포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소시지를 데쳐 핫도그를 먹고 나서, 우리는 또 하나의 관광지인 검은 모래의 해변에 도착했다. 역시 화산 활동의 여파로 만들어진 긴 검은 빛깔의 모래사장과, 주상절리, 그리고 촛대처럼 생긴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는데 고국에 있는 제주가 생각나는 풍경이기도 했다. 여기는 조금 더 규모가 큰 느낌이긴 했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게 몰아쳐 따뜻한 곳이 그립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연약한 인류는 이 행성의 온도 변화에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서서 옷을 입고, 거대한 쇳덩이들을 타고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한다.
해변 산책 후 나는 몸살 기운이 더 심해져서 차 뒤에서 뻗어버린 채 저녁까지 기절해 있었다. 그 사이 D가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 가루를 이용해 따뜻한 카레와 밥을 지었고, 뜨거운 것을 먹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기운이 났다. 우리는 검은 모래 해변에서 조금 더 달려, 빙하가 떠내려가는 곳이라 다이아 비치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 세 번째 잠을 청했다.
이틀 동안 잠을 자 본 결과 우리는 차량 지붕 뚜껑을 연다면 밤새 난방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차량 뒤에서 3명이 자기에는 너무 비좁았는데, 차량 지붕 텐트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운전석과 조수석 위에 걸치고, 그 위에 보조 쿠션들과 침낭, 베개를 놓아 평평하게 만들어 한 명을 더 잘 수 있게 해 보았다. 우선 첫날은 가장 날씬한 Y가 앞에서 자 보기로 했다. 제발 오늘 밤은 따뜻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