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우리는 확실히 예전보다 덜 추웠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그래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매서웠는데, 다음에는 최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문이 없는 면으로 주차해서 바람이 뺏어가는 열기를 줄여 보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조금씩 경험을 통한 지혜를 얻는다. 그것이 비록 이번 여행에서만 유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험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어쨌든 조금씩 덜 춥게 자고 있으니까!!
흘러내리는 빙하를 아침에 구경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새 우리는 남쪽을 빙 둘러 아이슬란드의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온천물을 받아 둔 작은 탕이 몇 개 있다는 곳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러 간단히 몸을 씻고 나서, 우리는 계속 해안가 피요르드를 따라 달렸다. 하늘은 계속 더 구름으로 어두워지고, 노르웨이 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량이 기우뚱거릴 만큼 세어졌으며, 해안선을 따라 몰아치는 파도는 그저 경이로웠다. 막 쏟아 내린 것 같은 돌무더기의 산 옆으로 굽이 굽이 난 길을 따라 우리는 계속 달리다, 멋진 전망대 앞에서 잠시 멈추기를 반복했다. 파도는 피요르드가 튀어나온 곳에서는 엄청나게 사납게 몰려들며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지만, 피요르드 안쪽으로는 잔잔한 호수 같은 대비를 계속 일으켜 같은 바다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점심은 미리 만들어 둔 당근 절임과 햄,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로 때운 후 우리는 계속, 계속 해안을 달렸다. 거대한 검은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고, 다양한 모양을 한 거석들이 바닷속에서 솟아올라 미친 듯한 파도에 끊임없이 깎여 나가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어느 새인가 저 거대한 돌들도 광포한 파도에 부서져 깎여 가리라. 자연이 일으키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과 변화는 사람을 참 작게 느껴지게 한다.
우리는 네 번째 잠을 드디어 유료 캠프사이트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 장소가 있는 작은 계곡 속으로 들어섰다. 계곡 입구에는 비교하자면 작지만 계곡 구석구석을 부딪혀 흐르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었고, 잠깐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다른 많은 캠프사이트들도 그렇다지만 겨울 시즌에는 운영자 없이 온라인으로 결제하면 키 박스의 비밀번호가 전달되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문제없이 문을 열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캠핑장에 들어섰다. 캠핑장은 깨끗하고 모든 장소들이 널찍널찍했으며, 그날 온 사람들도 우리밖에 없어 우리는 오랜만에 좁은 차 안에서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었다.
차곡차곡 내리기 시작한 눈이 매우 걱정이긴 했지만, 걱정을 한다 한들 지금 무얼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우리는 돼지고기 야채 볶음과 밥, 그리고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급한 대로 만든 김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봉지로 만드는 양배추 김치는 여행을 자주 다니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D가 종종 만들곤 한다는데, 그 퀄리티는 사뭇 놀랍긴 했다. 양배추를 잘라 넣은 봉지에 소금을 넣어 절인 후, 마늘과 쪽파 비슷한 것을 채 썰어 넣고, 캠프장에서 찾아낸 칠리가루에 약간의 액젓 효과를 내는 피시 소스까지 넣러 숙성하니 정말 김치 같은 맛이 났다! 라디에이터가 곳곳에 놓여 있어 그동안 살짝 미루었던 빨래도 해서 말릴 수 있었다. 공항에서 들어올 때 사 두었던 위스키와 맥주와 함께, 네 번째 밤이 고요히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