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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Apr 09. 2024

퇴사여행 11.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원에서

Iceland Day 5. 눈의 강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캠프장에서의 밤은 그동안 쉬었던 어느 날보다도 따뜻했다! 아마 바다에 바로 접하지 않은 계곡이라 바람이 덜 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용한 계곡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엄청나게 걱정이 되긴 했다. 전날 밤늦게 캠프장에 도착했던 한 일행이 더 있었는데, 많은 눈이 내리기 때문에 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남쪽으로 차를 돌려 레이캬비크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 다행히도 링 로드인 1번 국도의 북쪽 루트는 눈이 오고 있긴 해도 폐쇄되지는 않아, 우리는 서둘러 링 로드로 복귀해서 섬의 북동쪽을 건너가기로 했다. 계곡에서 나오는 길은 D가 다행히 눈길 운전을 좀 해보았다고 해서 부탁했고, 그 뒤에는 번갈아가며 눈길을 달렸다. 노르웨이 해에서 불어오는 눈구름은 징글징글하게 많은 눈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도로가 폐쇄되지 않은 한 우리는 더 갈 수 있다고 믿었고, 거대한 고원들 사이로 생겨난 설국을 질주했다.

눈은 하염없이 옆으로 흘렀다. 눈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처럼 검은 배 같은 두텁한 캠핑카를 타고 셋은 이동한다. 모든 것이 하얀색에 집어삼켜지고 다시 솟아오른다.  사진으로는 이런 광활하면서도 왠지 내 일부분을 빼앗아 가는 느낌을 주는 풍경이 도무지 담기지 않았고, 우리는 눈길을 넘어 계속 이동했다. 영화의 오프닝을 강렬하게 장식했던 데티포스 폭포를 너무 보고 싶었지만, 데티포스와 셀포스 폭포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이미 폭설로 폐쇄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조차 폐쇄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눈이 끊임없이 흘렀다.

점심은 아침에 캠핑장에서 싸 둔 완자를 넣은 토르티야로 해결하고, 우리는 계속 달렸다. 저녁에 도달할 목표는 중간에 있는 큰 온천 시설이었는데, 해가 지기 직전에 그곳 주차장에 겨우 도착해서 볶음밥과 계란국을 해 먹었다. 온천은 저녁 10시까지 한다고 적혀 있긴 했는데, 눈보라가 거의 지평선 방향으로 몰아치고 있어 인당 거의 7만 원에 육박하는 온천욕을 하는 건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졌다.

 근처 유료의 캠핑장은 몇 있긴 했지만 이미 씻을 생각을 포기한 여행자들에게 무의미한 지출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지만 온천 주차장에서 차들이 떠나는 것을 본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더 먼 길을 가서 캠핑이 금지되지 않은 주차장을 찾기로 논의했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D는 날씨를 고려하면 빨리 이곳을 벗어나 서쪽의 눈구름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이에 동의했다. 신들의 폭포라는 거창한 이름이지만 실은 그렇게 엄청나진 않은 폭포 옆의 작은 주차장을 한 시간을 더 달려 도착했고, 우리는 재빨리 잘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내일 눈으로 길이 끊기지 않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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