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장에서의 밤은 그동안 쉬었던 어느 날보다도 따뜻했다! 아마 바다에 바로 접하지 않은 계곡이라 바람이 덜 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용한 계곡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엄청나게 걱정이 되긴 했다. 전날 밤늦게 캠프장에 도착했던 한 일행이 더 있었는데, 많은 눈이 내리기 때문에 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남쪽으로 차를 돌려 레이캬비크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 다행히도 링 로드인 1번 국도의 북쪽 루트는 눈이 오고 있긴 해도 폐쇄되지는 않아, 우리는 서둘러 링 로드로 복귀해서 섬의 북동쪽을 건너가기로 했다. 계곡에서 나오는 길은 D가 다행히 눈길 운전을 좀 해보았다고 해서 부탁했고, 그 뒤에는 번갈아가며 눈길을 달렸다. 노르웨이 해에서 불어오는 눈구름은 징글징글하게 많은 눈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도로가 폐쇄되지 않은 한 우리는 더 갈 수 있다고 믿었고, 거대한 고원들 사이로 생겨난 설국을 질주했다.
눈은 하염없이 옆으로 흘렀다. 눈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처럼 검은 배 같은 두텁한 캠핑카를 타고 셋은 이동한다. 모든 것이 하얀색에 집어삼켜지고 다시 솟아오른다. 사진으로는 이런 광활하면서도 왠지 내 일부분을 빼앗아 가는 느낌을 주는 풍경이 도무지 담기지 않았고, 우리는 눈길을 넘어 계속 이동했다. 영화의 오프닝을 강렬하게 장식했던 데티포스 폭포를 너무 보고 싶었지만, 데티포스와 셀포스 폭포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이미 폭설로 폐쇄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조차 폐쇄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눈이 끊임없이 흘렀다.
점심은 아침에 캠핑장에서 싸 둔 완자를 넣은 토르티야로 해결하고, 우리는 계속 달렸다. 저녁에 도달할 목표는 중간에 있는 큰 온천 시설이었는데, 해가 지기 직전에 그곳 주차장에 겨우 도착해서 볶음밥과 계란국을 해 먹었다. 온천은 저녁 10시까지 한다고 적혀 있긴 했는데, 눈보라가 거의 지평선 방향으로 몰아치고 있어 인당 거의 7만 원에 육박하는 온천욕을 하는 건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졌다.
근처 유료의 캠핑장은 몇 있긴 했지만 이미 씻을 생각을 포기한 여행자들에게 무의미한 지출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지만 온천 주차장에서 차들이 떠나는 것을 본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더 먼 길을 가서 캠핑이 금지되지 않은 주차장을 찾기로 논의했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D는 날씨를 고려하면 빨리 이곳을 벗어나 서쪽의 눈구름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이에 동의했다. 신들의 폭포라는 거창한 이름이지만 실은 그렇게 엄청나진 않은 폭포 옆의 작은 주차장을 한 시간을 더 달려 도착했고, 우리는 재빨리 잘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내일 눈으로 길이 끊기지 않기만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