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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Apr 09. 2024

퇴사여행 12. 눈보라 속의 온천, 아쿠레이리

Iceland Day 6. 뚫린 길을 찾아서

일어나자 어제와 달리 쌀쌀한 기운이 공기 중에 있었다. 차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는 바람이 부는 방향에는 문이 없는 쪽으로 주차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마 밤새 계곡 바깥쪽에서 불어온 눈바람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제 긴 운전과 눈길의 긴장 탓이었는지 거의 깨지 않고 푹 잠을 잤다. 군대 군악대에 가는 꿈을 꾸었는데, 왜인지 모르겠다. 밤새 근처 지나가던 새들이 또 꽥꽥거렸을까?

정말 급한 볼일만 해결하고 나서, 우리는 바로 그 주차장을 떠났다. 뭔가 주차장처럼 생겼지만 캠핑카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던 것 같아 보였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폭포 반대편의 몇 군데 임시 주차장을 더 찾아보았으나 눈이 심하게 쌓여 있거나 폐쇄되어 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아쿠레이리라고 하는 계곡 사이로 바다가 들어온 곳에 위치한 마을로 향했다. 작다고는 하지만 고래를 보는 배들도 꽤 출발하는 것 같고 인구 약 2만 명이 있는 북쪽의 수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1번 국도에 딱 하나 있다는 유료 터널을 지나 우리는 주유소에서 급한 화장실과 아침을 해결했다. 터널비용은 톨게이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차가 지나가고 난 후 일정 시간 안에 인터넷에 접속해 차량 번호를 입력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나는 처음 겪는 것이었지만 D는 뉴질랜드에서 여행할 때 여러 번 경험했었다고 한다.

눈이 길에도 이미 꽤 쌓여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공공수영장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몸을 녹이기 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아이슬란드에서 경험한 최고의 온천욕을 맛보았다. 출발 받침대가 완비된 수영장과 여러 온도로 나뉜 뜨거운 노천탕들을 데우는 데 대체 얼마가 드는 걸까 생각했다가, 물을 데우는 방식이라면 절대 이곳을 유지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물 전체에 유황 냄새가 났고, 거대한 눈송이들이 쉼 없이 흩날리며 물속으로 잠겨드는 장면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한 뜻밖의 안온했던 순간이었다.

온천을 마친 후, 눈보라가 더욱 거세어졌고 나는 마을에서 조금 머무르며 정비할 시간을 가졌으면 했지만, 일기예보를 본 D 가 빨리 출발해야만 고립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간단히 토스트에 잼만 발라 먹고는 부리나케 다시 길을 나섰다. 일기예보는 아이슬란드의 북쪽 언저리에 자리한 눈구름은 앞으로도 2~3일간 머무를 것이라 했고, 1번 국도는 구간 구간 운행불가와 가능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구간을 어떻게든 지나가고자 1번 국도를 벗어나 해안선을 빙 도는 우회로를 선택했고, 다행히 해당 도로는 미끄럽다고는 하지만 운행 불가가 뜨지는 않았다.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합리적이지만, 대신 눈길을 운전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고 피로가 계속 쌓이는 단점은 있다.  목욕으로 조금 풀어내긴 했지만 사실 엄청난 강행군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건 잘 보이지 않는 길이 중간중간 계속 나타난다는 점이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져 화이트아웃이 된 길에서 가만히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서 있다 보면, 거대한 맹수가 할퀴고 가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거대한 검은 차에 몸을 가리고 눈폭풍을 나아간다. 남쪽을 지날 때 종종 1차선의 다리에서 상대방이 지나갈 때를 기다렸는데, 이곳에는 무려 1차선밖에 없는 터널이 있어, 지나가는 순간이 조마조마한 구간들이 꽤 있었다. 중간에 마주치는 경우, 터널 중간중간에 옆에 잠깐 댈 수 있는 공간으로 차를 피해야 했는데, 정말 어려운 운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큰 언덕에서 사고가 났는지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고, 경찰차로 보이는 차가 급히 와서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언덕 중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쳐 눈이 크게 쌓인 구간이 있어 차가 오르지 못한 곳이 있었는데, 30여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 겨우 겨우 우리는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중에 교통상황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통과한 후 그곳도 통행금지로 바뀌어 있었는데, 사실 눈에 며칠 고립되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하긴 하다. 어제에 이어 눈보라를 뚫고 지나 온 우리는 다시 1번 국도로 복귀해 캠핑을 금지하는 사인이 없는 주차장에서 간단히 햄버거를 해 먹고는 모두 기절했다. 다행히 눈보라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숨쉬기가 버거운 것 같은 바람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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