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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Apr 09. 2024

퇴사여행 15. 오로라를 기다리는 세 번의 밤

Iceland Day 9. 대륙판이 갈라지는 곳, 거인들의 회합장소

국립공원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이 나라는 국립공원이든 아니든 나라 전체가 이러한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기에, 굳이 국립공원을 따로 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국립공원의 명소를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는 대륙판이 갈라진다는 협곡을 향해 나섰다. 협곡은 정말 듣던 대로 갈라져 있었고, 매년 몇 센티씩 계속 멀어진다는데 확인할 순 없으니 그저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이다.


양 쪽으로 갈라진 계곡은 각각 수많은 거인들의 얼굴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까? 두 대륙의 거인들은 으르렁거리며 원치 않는 쪽의 대표자들을 삼켜 버리기라도 하듯 얼굴을 마주 대고 있고, 우리는 얼어 버린 계곡을 따라 천천히 그 사이를 걸어갔다. 아주 예전에는 이곳에서 많은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이긴 했다. 


협곡 끝에서 만난 작은 폭포는, 이곳저곳이 얼어 있음에도 국립공원 폭포의 위용을 뽐내며 세찬 물줄기를 아래를 향해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바다로 흘러드는 게 아니라 꽤 큰 호수로 가고 있었는데, 거대한 호수를 직접 보진 못해서 좀 아쉽긴 했다. 그래도 호숫가까지 걸어갔다면 아마 못해도 3시간은 더 걸렸을 거다.



 부활절 연휴가 드디어 끝나고(드디어 마트가 열린다!!!) 해서 약도 좀 사고 남은 기간 식료품도 챙길 겸 해서 수도 레이캬비크에 들렀다. 한인 마트는 없고 베트남 마트에서 한국 음식을 일부 판다고 해서 들렀는데, 400그램의 비xx 만두가 만오천 원, 라면 한 봉지에 4천 원 하는 살인적인 물가에 또 한 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한번 먹는 거니까... 



두 군데의 마트 장을 보고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경고음이 세게 들려서 깜짝 놀랐다. 급하게 길 옆으로 차를 대고 이곳저곳 설명서도 보고 난리를 쳐서 겨우 다시 고치긴 했는데, 원인은 발판에 끼인 얼음이 뭉쳐 발판 센서를 오작동시킨 것. 다행히 얼음을 깨부수고 다시 발판을 접어 넣으니 경고음은 해제되었다. 참 남의 차를 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런 극한의 날씨 상황 속에서는...



오후에는 케리드 분화구라는 곳을 갔는데, 화장실도 없는 곳에 입장료를 5천 원씩 받아서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좀 들었다. 정작 올라간 분화구는 바람이 세게 불어 너무 금방 보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분화구 안에 백록담처럼 작은 연못이 얼어 있었는데, 너무 황량하고 식물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 마치 공사판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분화구 구경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날씨가 좋을 마지막 날이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오로라를 처음 본 마을로 다시 향했다. 저녁은 김치참치찌개와 밥 그리고 샐러드였는데, 냄비가 없이 프라이팬에 할 수밖에 없어 찌개가 아닌 볶음에 가까워 요리를 한 D는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도 유리병에 담긴 이상한 김치를 이렇게 라도 먹는 게 어디인지!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게 자꾸 더 생겨난다. 



나는 감기기운으로 먼저 잠들었는데, 오로라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남은 둘이 밤늦게 오로라를 보라며 나를 깨웠다. 오로라는 첫날만큼 나타나진 않았다지만, 지속된 몸살과 기침으로 피폐해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첫날만큼 놀랍진 않았지만 그날도 오로라는 아름다웠다고 한다. 참 아쉽긴 하지만... 객담에 피가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해야 할 지경에 있던 나로서는 그저 무사히 이 여행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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