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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lintheSea May 17. 2024

퇴사 이후 매일 곱씹어보는 것, 나는 가치있는 존재인가

회사에서의 탈출이 자유는 아니지만, 조금 더 의미를 찾고 싶었어.

퇴사 직전 여러 모로 스트레스와 무기력함에 빠져 있던 시기 중 가장 자주 머리를 스친 건, 삶이 마치 빚 갚는 기계와 같은 목적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이 느껴졌던 순간들이다. 난 물론 그런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되뇌고, 퇴근 후 소위 워라밸을 생각해 여러 취미 활동도 해 보았고,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뭐 자랑할 만큼은 아니어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고 살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더 윤택하게 살게 해 드리지 못해 미안하긴 했지만, 그렇게 춥고 배고프게 살진 않아도 되는 그런 어딘가.


퇴사를 하고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 지금까지

내가 왜 퇴사를 했었는지, 그때의 마음을 종종 반추해 본다. 내 딴에는 나를 한때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의 승진에 대한 질투심도 마음 한 구석에서 있었던 것 같고, 마음처럼 오르지 않는 연봉과 갚아지지 않는 빚에 대한 조급함도 발견한다. 어찌 되었던 내 인생은 의미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철저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커플 성사를 목적으로 다른 성별의 사람들이 며칠간 모여 지내는 관찰 예능이 있다. 예능 초반에 사람들은 자기소개 시간이라는 것을 가지는데, 자랑할 만한 소위 좋다고 하는 학교 출신이라거나 대기업의 직원이라거나 하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탄성과 인정하는 표정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살아온 길도 저렇게 그려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살아왔고, 스스로 탑의 정점에 올랐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남이 인정할 만한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안심했던 시간들. 그리고 마흔을 넘고 나니 나는 더 이상의 성취가 없는 것이 불안했던 걸까. 그런 성취가 당연히 나의 인생에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천천히 계속 텅 비어져가고 있었다.


인생이 바다 같다면, 바다는 이제 고요해지고 나란 작은 종이배는 그저 가만히 떠 가며 안정적으로 항해할 일만 남은 것 같아 보여도, 실은 종이가 젖어 들어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라도 비슷한 감정과 순간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무시되어야 할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런 고비는 몇 년마다 크게  찾아오는데, 이번 파도에선 타고 넘어서지 못한 거겠지. 물론 넘어서도 그럭저럭 또 지나갔을 거라곤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종이배에서도 숨이 막혀 익사하진 않아 다행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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