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진 Feb 12. 2021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나는 비정규직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제 제주도에서 면접을 보고 왔다. 몇 년 전부터 품어왔던 1년간의 제주살이를 위한 것이다.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한 후 걸려 온 지인들의 전화에 제주도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어머, 너 정말 재밌다.’

‘푸핫,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면접 봐야 돼?’

‘간 김에 여행도 좀 하고 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퇴직(혹은 퇴사, 의원면직 ) 하기 전에는 몰랐다.  직업이 꽤나 전문적이라는 것을.

교육대학교를 졸업해야만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임용 재수생 혹은 발령 대기자가 아니면 기간제 교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인력풀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임용생들이 공부에 전념하는 2학기의 기간제 교사를 우리는 흔히 ‘모셔간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선생님, 그 사람 같아. 미스김. 예전에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그 드라마 있잖아.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계약직 그 사람.”     


작년에 3개월 일했던 학교의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2013년 김혜수 주연의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일본의 드라마가 원작인 이 드라마를 나도 재미있게 봤었다. 사실 그때는 오버하는 코믹풍의 이런 드라마가 너무 일본스러워서 조금 적응이 안되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통쾌했었다. 미스김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슈퍼갑 계약직 미스 김’     

중장비 자격증까지 가지고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중요한 물건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지금은 점심시간 입니다만’라고 말하는 미스 김 정도는 아닐지라도 비정규직인 나에게 계속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주로 예전에 일했던 또는 면접을 봤던 학교에서 신학기를 맞이하여 기간제 교사로 와줬으면 하는 것이다. 30대 한창 일할 나이에 1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학교에 필요한 교사인 것이다.     


어떤 이는 나에게 묻는다.    

  

‘다시 시험 볼 생각 없어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언급하며 내 인생까지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네, 지금은 생각 없어요.’     


비정규직이어서 내가 근무할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지금 현재 이 삶이 나는 마음에 든다. 나이와 경력이라는 나름의 메리트가 있기에 당분간 밥줄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다. 겸직이 불가능한 공무원일 때는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도 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정착하고 싶은 곳이 생기고 정년까지 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임용시험을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 한 가지, 대출이 예전처럼 프리패스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불편하다.        




얼마 되지 않는 글을 적어놓은 나의 브런치에 꾸준히 유입되는 키워드가 있다.

     

‘의원면직’, ‘교사 그만두기’     


의원면직이라는 것 자체가 공무원들에게 해당되는 단어라서 교사 또는 공무원들이 이 단어를 많이 검색했다는 뜻이 된다. 처음에는 내 글을 누군가는 조회하고 읽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 나중에도 꾸준히 이 키워드로 유입되는 걸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      


‘많은 공무원들이 행복하지 않구나.’     


초등교사 커뮤니티에 퇴직을 고민하는 신규교사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응원하고픈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대강 ‘나도 퇴직했는데 지금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의 짧은 댓글이었다. 그 댓글에 꽤 많은 쪽지를 받았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그 이후의 밥벌이가 걱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한 것이다. 나는 여러 경험과 시도를 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벗어나 성공한 것은 없다. 뭔가 성공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지금 예전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24살부터 일해왔던 직장을 떠날 때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나를 아껴주는 동료 선생님, 선배님들의 응원과 따뜻하고 진심 어린 조언들도 많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결정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들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나도 우물 안이었으니까. 우물 밖을 나가본 적이 없기에 첫 발을 내딛기가 두렵고 떨렸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직장을 내 발로 박차고 나가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걱정되었다. 누군가는 배가 불렀네, 라며 나의 선택을 비난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회하고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이.      


작년,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의 공무원 합격소식을 듣고 같이 울었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공부했던 친구임을 알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지하게 퇴직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렸다. 얼마나 힘든지, 어떤 마음일지 감히 공감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나도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나는 웹툰 마니아다. 최근 즐겨보는 웹툰에서 주인공은 출근길에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에서 퇴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반대 방향의 여유로운 지하철을 타고 가며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도 이렇게 남들과 다른 반대쪽을 향해가면

좀 더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주영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