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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Mar 20. 2021

육지에서 면접보러 왔습니다(1)

제주도에 취직하기

제주도 교육청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고 바로 비행기를 예약했다. 지원자는 모두 면접을 응시한다고 명시되어 있길래 일단 짐을 쌌다. 새 언니가 한 마디 던졌다.

    

“간 김에 방도 좀 보고 와요 그럼.”     


아, 생각지도 못했는데 좋은 방법이다. 합격여부를 기다렸다가 또 방을 보러 가고 다시 올라와서 이삿짐을 싸서 내려가는 건 정말 번거로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일정은 2박 3일이 되었다.    


 

첫째 날(월요일).     

오후 느지막이 제주도에 도착해서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한테 에어비앤비 방에 앉아서 지원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지원서도 안 쓰고 비행기부터 탔다며 ‘ㅋㅋㅋㅋㅋ’를 연발했다. 지원서에는 ‘수업 계획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수업 계획서’를 쓰는 게 쉽지 않았다.     


※ 특별한 양식 없이 A4용지에 응모자가 자유롭게 기술(2매 이내)

  -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의 방향성과 수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 그에 따른 수업 방법과 평가 등에 관해 자유롭게 기술하되, 개인의 민감정보가 될 만한 내용은 기록하지 않음     


원래 ‘자유롭게’가 제일 어렵다.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나 보던 국가 수준 교육과정까지 찾아 읽었다. 그렇게 3시간가량 제주교육과 영어교육(내가 지원한 자리가 영어전담 자리였기 때문)에 관한 수업의 방향성을 실컷 지어낸 뒤, 지원서를 제출하고 잠이 들었다.    

지원서를 열심히 썼던 에어비앤비 방

 

둘째 날(화요일)     

뚜벅이가 되었다. 여행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어서 차를 렌트하지 않았다. 두툼한 패딩을 껴입은 채로 버스를 타고 일단 내가 지원한 학교 근처로 갔다. 내가 이 학교로 1년 동안 출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왠지 두근거렸다. 학교 정문에는 돌하르방이 서 있었다. 관광지에만 있을 것 같은 돌하르방이 학교 정문에 있다는 게 너무 신선해서 동영상까지 찍었다. 어제 새벽에 지원서를 제출한 주제에 이미 면접에 합격한 양, 인조잔디가 예쁘게 깔린 학교를 실컷 즐긴 뒤 부동산으로 향했다.


방을 알아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서울처럼 부동산 한 군데에서 매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어서 한 곳에서 방 하나 보는 식이었다. 심지어 혼자 살만한 집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해수욕장 근처까지 걸어가게 되었는데 바로 거기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모습에 반해서 ‘이 집으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해버렸다. 베란다 창으로 한라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귀여운 오름들이 똥똥똥 세 개, 오른쪽으로는(너무 치우친 오른쪽이긴 하지만) 바다도 조금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계약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면접도 보지 않았다.     


“마음에는 드는데, 아직 직장이 확정되지 않아서 일요일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럼 이거 놓치겠네. 어쩔 수 없죠.”     


부동산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좀 불안해졌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네 집이 될라치면 그때까지 남아있을 거야.”     


역시, 연륜이 묻어나는 지혜의 말이다. 중고차든 집이든 다 자기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마터면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에 휘둘릴 뻔했네 휴.



셋째 날(수요일: 면접 당일)          

이렇게나 철저하게 기간제 교사 면접을 본 건 처음이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짜리 자리인데 임용시험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면접에 대한 안내 후, 핸드폰을 반납했다. 면접자들은 거리두기로 두 칸씩 띄어 앉아 있었고, 순서대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가 봐도 갓 대학을 졸업한 것 같은 대기자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경쟁력이 있지 않나?’하는 안일한 생각을 해가며 멍 때리기를 시작했다.    

응시번호 16번. 멍 때리기 시간

  

1시간 40여분 쯤 지났을 때 응시번호 16번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면접 구상실로 이동했다. 구상실이라니... 10년 전 임용시험을 볼 때나 들어봤던 단어였다. 6분 동안 구상하고 면접실에서 6분 동안 그 질문에 차례대로 대답하는 순서였다. 면접실에서 질문지를 받아 드는 순간, 왜 구상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질문이 꽤나 어려워서 준비시간 없이 면접을 봤다면 헛소리나 하고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세 가지 질문(기억나는 대로 적었음. 핵심은 비슷하지만 서술은 다를 수 있음.)     


1. 제주도는 백 명의 생각을 존중하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수업에 적용하고 지도할 것입니까?     

‘헉’      


2.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학생을 어떻게 키울 수 있겠습니까?     


‘모르겠는데..?’     


3. 다음의 두 교사의 상황을 본인이라면 어떻게 극복할지 대답해보시오.

  -A교사: 원격수업자료 제작이 어렵다

  -B교사: 수업에 소극적이고, 교우관계를 어려워하는 아이의 학부모님과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이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본다고 생각하며 언짢아합니다.      



3문제를 가장한 4문제였다. 일단 1,2번은 생각이 나지 않아 재끼고 구체적인 상황이 주어진 3번의 답변부터 끄적였다. 그러고 나니 3분이 지나있었다. 그제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 다음 면접실로 이동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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