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나는 불안함을 느꼈어.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돈과 진로야.
당장 쓸 돈이 필요했고, 앞으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되기 시작했어. 우간다로 가는 것은 아직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뜻 준비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럼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
' 후회할 것 같으면, 하자.' 면서 교사로서 당당히 사표를 날렸는데 9개월 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다닌 게 끝이야?
물론 그 9개월이 한국에서 얌전히 직장 생활하며 다닌 9개월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끝내고 다시 한국에 정착해 사는 것은 멋이 없어 보였어. 아니, 나 스스로 용납이 안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었어. 어차피 우간다에 가든 어디를 가든, 수중에 돈이 없으니 몇 개월이고 기간제 교사로 돈을 벌면서 진로는 차차 생각해보자 했지.
보통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뽑을 때 그 학교 홈페이지에 공고를 올리지만 구직을 하는 입장에서 근처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다 찾아볼 수는 없잖아. 가장 좋은 방법은 시교육청 구인 구직란에 올라오는 공고를 매일 살펴보는 거야. 사실 나는 기간제 교사 경험이 없어. 임용시험 후에 3월 17일 자로 바로 정식발령이 났거든. 경력은 9년이 넘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에 전화를 걸기 전에 괜히 두근두근 거렸어.
나름 구직 자리의 기준은 있었어. 담임이 아닌 전담교사 자리일 것. 그것이 영어면 더 좋고. 담임 수당은 달마다 13만 원 정도인데 그 업무량은 과히 13만 원에 비할바가 아니야. 같은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즉, 쉬는 시간까지 포함한 모든 생활지도를 해야 한다는 말이지. 교실 관리, 청소지도, 학부모 상담에 급식지도까지 있으니 교사가 4시 30분에 퇴근하는 게 너무 빠르다고 욕할 것도 아니야. 급식 먹다가 아이들의 토사물까지 치워야 하는데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시키는 게 그리 잘못된 처사는 아닌 것 같아.
어쨌든 집에서 가까운 곳의 전담 자리를 구하려니 마땅치가 않아서 매일 공고 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어. 담임 자리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있었는데 전담 자리가 쉽지 않더라고. 그런데 또 이 공고가 언제 어떻게 날지 모르는 거야. 어떤 선생님이 갑자기 아프다거나 다치거나 할 수 있는 거고 아니면 가족을 간병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하루하루 애가 타던 중에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 한 달짜리 영어교사 자리가 났길래 전화해봤어.
"안녕하세요, 기간제 교사 공고를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대환영입니다아아~~"
대환영? 나는 그냥 전화만 한 것뿐인데 대환영이라는 말을 들었어. 전화기 너머로 교감선생님의 기쁜 목소리에 나는 잠시 당황했어. 그만큼 이 학교는 외진 곳에 있어서 누구도 지원하는 곳이 아닌 거지. 교감선생님도 공고를 올리긴 했지만 사람이 구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가정에 급작스런 일이 생겨서 한 달 휴가를 쓰신 기존 선생님은 내가 온 것이 너무 고맙다며 커피 쿠폰을 책상 위에 두고 가셨어. 나는 그냥 일을 구했을 뿐인데 얼굴도 못 뵌 그 선생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나 봐. 그리고 아이들은 한 달짜리 선생님에게 마음껏 마음을 표현해 주었어. 사실 이게 한 달이라 가능한 것 같아. 서로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전에 그냥 빠이빠이하면 되는 거니까. 심지어 6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천사같이 착한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해 주었어.
가장 놀라웠던 건 내 월급이었어. 교사는 기간제도 호봉으로 월급이 책정되기 때문에 한 달짜리 계약이든 일 년짜리 계약이든 쌓인 경력 그대로 호봉으로 받을 수가 있어. 게다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세금이나 보험 같은 것 말고 다른 기여금을 떼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더 많더라고. 그때 느꼈어. 아, 교사는 전문직이구나.
누군가는 교사가 뭐 전문직이냐며 논쟁을 하려 들 수도 있지만, 전문직이라는 것이 특정 자격이나 면허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잖아. 그럼 교사도 전문직이 맞아. 초등교원 자격증이 필요하고 내 경력이 그대로 월급에 반영되는 거니까. 또 아무나 할 수도 없는 거잖아. 정규직일 때의 나는 교사가 전문직이라고 하면 살짝 부끄러웠는데, 막상 비정규직으로 교사를 바라보니 전문직이 맞더라고.
흠, 비정규직도 나쁘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