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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정 Mar 08. 2024

시간이 멈춘 곳에서 시간을 초월한 곳으로

시간이 멈춘 곳에서 시간을 초월한 곳으로 / 2024


할머니의 마지막 두 시간을 온 가족이 끊임없이 감사하고 죄송하고 사랑한다며 말해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모두가 바랄 마지막이지만 모두에게 허락되진 않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명절에 '시골집'을 찾는 여느 가족들과는 달리 우리 가족에게는 이러한 명절이 가족행사였던 적이 없었기에 부끄럽지만 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절하는 법을 잘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큰절을 두 번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서툴게 꾸벅, 두 번째엔 허리를 숙이며 몸을 낮추는데 ‘이것은 할머니께 드리는 진짜 마지막 인사다’ 하는 생각이 강렬히 들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맥락에서 갖는 ‘절’의 의미와 무게가 단순히 말로써 작별을 고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무거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이후에 진행된 위로예배에서 나는 찬송 한 줄 못 따라 부르고 계속 울기만 했다. 조금 아이러니한 건 이곳이 장례식장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97세에 지병 하나 없이 평안히 돌아가셨다는 사실 때문에 엉엉 울기가 조금 부끄럽고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는 혼자 화장실에 가서 또 한참을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부터 곡기를 끊으셨기에 아무리 늦어도 2월에는 할머니가 눈을 감으시지 않을까 하고 모두가 예상한 바였다. 그럼에도, 아무리 예견된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와 함께 오는 상실감을 조금도 덜어줄 순 없는가 보다. 엄마는 나보고 할머니 손주들 중에 네가 제일 많이 운다고 했다. 원래 제일 많이 우는 자식이 불효자라는 말이 있는데 말이다. 막 떠나간 사람을 생각할 때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들만 머릿속에 가득 차기에 그런 말을 들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입는 옷마다 참 곱고 예쁘다며 항상 관심을 보이셨는데 어쩔 때는 그러한 관심이 부담으로 다가와 일부러 겉옷을 걸쳐 입고 집을 빨리 나왔던 적이 다수 있었다. 이번에 장례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의 옛 사진을 보고 싶어서 앨범들을 쭉 훑어보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하셨던 칭찬들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내가 할머니의 취향을 물려받은 걸까 싶을 정도로 사진 속 할머니의 옷들이 내 옷장에 있는 옷들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도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옷을 물려 입기도, 훔쳐 입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단지 할머니가, 네가 옷 사 입는 곳에서 내 옷도 몇 벌 사다 줘라, 하셨던 적이 꽤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 제 옷은 다 중고라서 똑같은 걸로 사다 드릴 수가 없어요, 하고 대답했던 게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특정 행동이나 행위로부터 드러나는 개인의 면모 같은 것들이 있다. 할머니는 의식이 흐려져감에도 언제나 당신의 왼손에 손목시계를 차시던 분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할머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육 남매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어떻게 보면 끈덕지게—하루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재판관을 찾아와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 과부가 있었는데, 재판관은 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었음에도 과부가 너무나도 끈질기게 간청을 해대니 그 귀찮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잠잠한 새벽을 몇십 년간 동일하게 깨웠을 할머니의 끈질긴 기도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이 과부가 겹쳐 그려졌다. 실제로 할머니는 과부셨고 혼자서 육 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내신 분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성정이 본디 그리 억척스러웠을지, 아니면 처한 환경이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그렇게 만들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자식을 여섯이나 두고 남편을 여읜 40대 여성에게 닥친 당장의 현실은 그야말로 집채만한 파도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자식들을 다 보시려는 마음이었는지 혈압이나 산소포화도가 측정이 되지 않는데도 그로부터 두 시간 반을 더 버티셨던 할머니의 마지막을 다시 떠올려 볼 때 할머니를 가장 잘 축약한 단어는 역시 정신력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시계는 당신의 끊이지 않는, 그 고집스러운 정신력을 보여주는 상징물과도 같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 후에 나는 할머니와 주인을 잃은 손목시계, 그리고 당신의 정신력을 함께 기리고자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시간을 초월한 곳으로 떠난 할머니를 추억하며, 97년간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히 휴식하시기를 소원하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신 하나님의 보살피심에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며, 그렇게 그림을 그렸다.  



2024. 02. 04.

고이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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