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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Dec 24. 2023

70세 엄마와 4세 딸과의 여행

일상의 풍요로움 5

여행을 하는 동안 자주 생각한다.


‘그냥 집에 있을 걸.‘


많은 돈을 들여서, 오며 가며 시간을 버리고, 잘 모르는 곳에서 헤매며, 짐을 풀었다 쌌다 고생인 행위를 대체 왜 하고 있을까, 고민해보지 않은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여행이란 만만치가 않으니까!


하물며, 70세 엄마와 4살 딸내미와의 여행이라면?


크리스마스연휴를 맞아서 이틀 더 휴가를 내고 태국의 파타야로 여행을 왔다. 스레이소폰에서 출발해 씨엠립에서 하루를 보내고, 씨엠립에서 방콕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 후, 미리 예약한 차량으로 파타야까지 오는, 길고 복잡한 여정이 그렇지 않아도 부담이 돼서 비행기표를 예약한 그날부터 후회하기 시작했었다.


오는 길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몇 달 전 가벼운 마음으로 포이펫 국경을 넘어 태국의 Big C나 구경해 볼까 했다가 입국거부된 적이 있었다. 입국목적이 여행이면 호텔예약증과 현금과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내놓으라는데, 하루 만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더니 기가 막힌 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하며 입국거부 도장을 찍어버렸던 것이다.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는데 나 역시 기가 막혀서 다방면으로 항의했지만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었다.


그날 다시 캄보디아로 재입국하면서 태국 입국이 거부된 서너 명의 한국인들과 외국인 두어 명을 더 만났다. 호텔예약증과 방콕에서 본국으로 들어가는 항공권이 있는 여행자조차도 ‘여행이 목적이면 항공을 이용하라’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날은 누구도 태국 국경을 통과할 수 없는 날이었나 보다. 캄보디아 쪽 국경 직원들조차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이 돌려보내지?’하며 갸웃거렸다.


그날 찍힌 도장으로 인해 캄보디아 출국부터 문제가 됐다. 어딘가로 따로 불려 가서 어디에서 살며 무슨 일을 하는지 꼬치꼬치 묻느라 한참이 걸렸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출국 심사대에서 붙들려 있느라 출국장으로 들어왔을땐 시간이 얼마 없었다. 기내식이 안나오는 줄 알고 부랴부랴 아침을 사 먹고 거의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이륙하자마자 기내식이 나온다. 뭐, 거기까진 좋았다.


태국 입국 심사대에서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또 어딘가로 불려 가서 한참의 시간 동안 붙들려 있야했다. 이런저런 신원조사를 또 거치고, 서류를 하나 써서 서명하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그동안 4세 딸내미가 꽂힌 건 지문스캔이었다. 태국은 입국할 때 오른손 왼손의 네 손가락을 한 번씩, 엄지손가락 두 개를 한번 스캔해야 하는데 내가 하는 걸 본 아이가 “엄마, 나는 왜 손가락 안 해?’를 무한반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신없어서 제대로 대꾸를 못했더니 “엄마 나도 손가락 하는 거 하고 싶어.” “엄마 나도 손가락 해볼래.” 옆에서 끝없이 물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조용히 달래다가도 한 번씩 버럭 했다.


”지금 심각하니까 가만히 좀 있을래? “


아이는 분위기는 감지했는지 입을 다물고 잠시 앉아 있다가 이번엔 ”나 그림 그리고 싶어. “, “유튜브 보고 싶어.”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찰아저씨 산타할아버지를 동원해 가며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길 여러 번. 인고의 시간 끝에 겨우 입국 도장을 받았다. 공항 직원들이 “국경 쪽에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갸웃거리며 미안한 미소를 지었기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여권 새로 만들기 전엔 태국은 안 오리라.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나에게 “가방 찾아놓고 있을게.” 해놓고 혼자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엉뚱한 곳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가방이 나오지 않아 공항 직원을 붙들고 한국어로 하소연을 하고 넓은 공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어느 직원의 도움으로 가방을 찾긴 찾았는데 내가 아무 소식도 없고 어디 있는지도 몰라 애를 태우고 있었다.


내가 짐 찾는 곳을 찾아갔을 때 엄마는 어떤 직원을 붙들고 손짓발짓으로 한참 무언가를 얘기하는 중이었다.


“엄마, 뭐 해?” 나를 본 엄마는 그동안 공항을 헤매다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우리 항공기 짐 나오는 곳이 어딘지 확인도 안 하고(그래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입국심사하고 나오자마자 본인 바로 앞에 보이는 라인에서 가방을 기다렸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나마 순조로웠던 우여곡절이었다. 여행은 진행 중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엄마와 딸의 시중을 들고 있다. 질 놀다가 떼쓰고 징징대는 딸을 보며 ‘널 데리고 여길 왜 왔을까’ 하다가 또 좋아하면 다행이다 싶다. 엄마는 음식 평판 외엔 무난한 편이다.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그냥 집에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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