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야바에서 우붓 투어를 미리 예약했다. 발리에 도착한 다음 날이라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먼저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보통 투어 전 날 저녁에 차랑 기사로부터 연락이 오는데 저녁 9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다. 혹시 예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낮에 예약 확인 차 연락 온 여행사로 문의했더니 기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기사 이름을 알려준 걸로 봐서는 예약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연락처를 알았으니 기사로부터 연락이 오거나 내일 예정대로 픽업을 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밤새 아무런 연락이 없던 기사는 투어 당일 아침에서야 10분 정도 늦겠다는 문자가 왔다. 전날 하지 못한 연락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어이가 없었지만 10분 정도야 가볍게 기다려 주었다.
기사는 예정 시간보다 정확(?)하게 10분 늦게 도착했다. 미안하다는 그에게 왜 어제저녁에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깜빡했다고 한다. 투어 기사가 해야 할 일 중의 중요한 일인데 그걸 잊어버렸다는 것이 의아했다.
어쨌든 투어를 위해 차는 출발했다. 어제 늦게 도착해서 잘 보지 못했던 우붓이 차츰 눈으로 들어왔다.
제일 먼저 스윙과 푸른 논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네는 다소 무섭다고 해서 많이 망설였는데 페낭의 페러세일링처럼 큰맘 먹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기다리는 여행객이 없어 도착하자마자 바로 탈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집에 그네가 있어서 많이 탔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네가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힘껏 다리를 구르며 언니와 쌍그네도 즐겨 탔는데 이제 그런 용기는 온데간데없다.
장비를 착용하고 그네를 타기 전부터 높이 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무섭지 않을 만큼 적당히 잘 밀어주었다. 조금 익숙해지니 앉아서 다리를 굴릴 용기도 생겼다.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어린 시절 그때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높게 날아오르는 그네에 앉아 늙은 나는 잊어버린 채, 야무지게 다리를 구르며 앞마당의 그네를 타던 예닐곱 살 계집아이가 되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때가 하늘에 매달린 구름처럼 잡힐 듯 말 듯 하다.
생각보다 많이 무섭지 않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더니 높이 밀지 않아서 그렇다고 기사가 초를 친다.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어도 탈 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지만 어쨌든 나의 두려움을 털어내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계단식 다랭이 논은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것이 불편해서 근처만 가볍게 걷다가 곧 나왔다. 여행자들에게는 사진빨 잘 받는 그림 같은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는 일터인지라 그곳에 머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더니 기사가 뜻밖의 말을 들려준다.
이곳의 논 주인과 스윙업체는 서로 협약을 맺어 논을 정갈하게 잘 관리해서 그네의 좋은 배경을 제공하는 대신, 스윙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그곳을 찾는 여행자들로 인해 논 주변의 가게도 활성화되어 서로 윈윈 하는 관계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다시 돌아가 마구 뒹굴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든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 나도 쓸데없는 걱정을 덜 수 있어 좋았다.
다음 코스로 힌두교 사원으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려는데 기사는 불쑥 피곤하다는 말을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피곤하면 어쩌느냐고 물었다.
약간 살집이 있어 오르막이 힘들어서 그런가 했지만 이제 막 투어를 시작하는 내 입장에서는 황당한 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는 처음부터 생기가 없어 보였다. 치어리더처럼 팡팡 튀라는 건 아니지만 그의 무거운 분위기가 괜히 나를 불편하게 했다.
계단식 논에서도 내려가 보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한 코스인데 내려가겠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의도로 느껴졌다.
나도 논두렁을 걷는 것이 그다지 마음 편한 것은 아니라서 조금만 걷다가 나왔지만, 당연한 코스를 그가 먼저 안내를 해야 할 상황에서 내게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것은 마치 안 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들렸다.
다음 코스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서른 살 싱글로 직원이 70명 가량되는 중형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여행객이 늘어서 일주일째 쉬지 못하고 계속 투어를 나가고 있다고 한다.
어제도 늦게 마치고 피곤해서 잠이 드는 바람에 내게 미처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극성수기는 아니지만 6~8월이 되면 그때도 지금처럼 비번을 줄여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고 일을 해야 될 거라고 한다.
그럴 경우 보수는 더 받겠지만 몸으로 삐져나오는 피로의 피해는 당사자는 물론, 정당한 값을 치른 여행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의 입장도 이해는 되나 그렇다고 내 기분까지 가라앉고 싶지는 않았다.
떠그눙안 폭포에 가서도 내가 원하면 같이 가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가도 된다는 맥 빠지는 소리를 하길래 혼자 갔다 올 테니 차에 가서 쉬라고 했다. 금세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누가 옆에서 내내 따라다니는 것도 불편한 일이라 홀가분하게 폭포로 내려가보았다. 거기까지 따라온 어느 가이드는 내가 구경하느라 잠시 멈추어 선 바로 옆에서, 사진 스팟으로 여기가 좋다며 그의 손님에게 포즈까지 일러주며 사진을 찍어 준다. 남자복 없는 내가 인도네시아 남자복이라고 있겠나 싶어 시원한 아이스 음료수로 속을 달랬다.
30분 남짓 그곳에서 머물다가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있던 기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커피농원 코스인데 달랏에서도 이미 가 보았고, 족자에서도 루왁 커피를 사서 커피농원은 생략하고 다른 사원을 가기로 했다.
사원 어딜 가도 출입구가 똑같은 형태인 게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양쪽이 똑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은 양손을 맞붙여 기도하는 형상으로 힌두교 사원의 문은 다 그렇다고 한다.
들어올 때는 어서 오세요, 나갈 때는 안녕히 가세요 라며 양손을 맞댄 형상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드나들 때마다 그런 인사말이 전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몽키 포레스트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걸리면 점심을 사주려고 했는데 그럴 마음이 없어졌다. 나도 폭포 앞에서 들이킨 음료수로 허기를 면해서 밥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몽키 포레스트는 인기가 많은 곳인지 여행객들로 많이 붐비었다.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제멋대로 다니고, 놀거나, 자고 있다.
오래전부터 먹이가 풍부해서 원숭이들의 자연 서식지였는데 그것을 가꾸어서 지금의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원숭이가 천 여마리가 넘는다고 하는데 원숭이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뭐가 다른가 싶다.
가다 보니 길 한복판에 대자로 누워 자는 놈, 물장구를 치며 노는 놈, 암수 정답게 지내는 놈, 여행객의 안경 케이스를 훔쳐 도망가는 놈..... 가지가지다.
양지바른 난간에 앉아 암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수놈의 표정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맘 변하지 말고 오래오래 둘이 행복하라고 빌어주었다.
모든 코스를 마치고 나니 겨우 한 시가 넘어서고 있다. 예정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는데 커피 농장을 가지 않은 것도 있고, 방문했던 장소에서 오래 머물지 않아서 빨리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기사에게 말했다. 오늘 일찍 마쳤으니 집에 가서 푹 자라, 내일도 손님이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 컨디션을 회복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도 그래야겠다고 한다. 그는 내가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인지, 직업의식이 부족해서인지 아직까지도 컨디션이 다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탕탕 집에서 쉬는 게 좋겠냐? 지금처럼 일 하는 게 낫겠냐? 고 물으니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일하는 게 훨씬 낫다고 한다.
힘들고 지칠 때는 가끔 코로나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러면 지금의 피곤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코로나에 비하면 일이 많은 지금이 행복하다고 그가 말하는 동안 차가 숙소에 도착했다. 팁으로 100,000루피아를 주었다. 오늘 두 번째로 본 그의 환한 얼굴이다.
차를 돌려보내고 숙소로 들어서면서 문 턱에 생각 하나가 걸린다. 예전에 나는 저런 적이 없었는지, 두 아들 녀석들은 저렇게 온몸으로 감정을 뿜어내고 일하지는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