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라 넉넉할 것 같았던 시간도 이젠 마지막 일정인 발리에서 8일만 남겨두고 있다. 주머니에 가득 들었던 알사탕을 거의 다 꺼내 먹은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하다.
공항 사정이 어떨지 몰라서 수라바야 숙소에서 일찌감치 나섰다. 예상보다 공항은 복잡하고 수속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서둘러 나온 보람도 없이 비행기는 1시간 지연 출발이다. 숙소의 아침이 부실해서 커피만 마시고 나왔지만, 예정대로 발리 숙소에 도착하면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상황은 내게 밥 먹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더욱이 발리와는 1시간 갭이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1시간을 도둑맞은 셈이 된다. 주린 배를 안고 발리 주안나 국내선 공항에 도착했다. 밖에 나오니 예약해 두었던 픽업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은근 위안을 받는 순간이다.
가는 동안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온통 배고픈 생각 밖에 없다. 공항에서 우붓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나 걸리겠어? 했는데 정말 그만큼을 달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비행시간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오는데 꼬박 하루를 다 날려 먹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만 넣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길은 온통 울퉁불퉁하고 중간중간 싱크홀 같은 구멍이 나 있다. 사방은 어두컴컴해지고 배는 고프고 허기져서 어떻게든 음식은 먹어야겠는데, 잘 모르는 현지 음식에 또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똘똘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무리 가도 내가 원하는 식당은 나오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무작정 더 갈 수도 없었다. 마침 작은 햄버거 가게가 눈에 띄었다. 1년에 겨우 한 개를 먹을까 말까 하는 햄버거를 발리의 첫 끼로 먹기로 했다.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가게 여주인의 미소에 오느라 쌓였던 피로와 허기가 가시는 듯하다. 물건을 모르면 비싼 걸 사라고 했던가? 그중에 제일 비싼 햄버거와 음료수를 시켜 보았다.
혹할 맛은 아니지만 짜서 몇 번이나 실패한 나시고랭이나 향이 센 현지 음식보다는 괜찮았다. 이번 여행에서 오늘만큼 먹는 것에 절실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대충 먹어도 배 고프면 주변에 보이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먹으면 되지.... 해서 급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점점 어두워오는 어둠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든 것 같다.
무사히 한 끼를 때우고 돌아서는데 올 때보다 어둠이 더 짙어졌다. 그래도 아까처럼 초조하거나 무섭지 않다. 그제야 마음이 느긋해진다. 작은 햄버거 하나가 이렇게까지 나를 다독여줄 줄이야......
든든해진 배를 안고 울퉁불퉁한 길도 잘 건너고, 구멍 난 길도 잘 피해 왔던 길을 씩씩하게 되돌아왔다. 보이지도 않는 이 마음은 무엇에 따라 이렇게 쉽게 바뀌는 건지...., 마음도 배가 불러야 여유가 생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