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일정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안내문이 보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반갑다. 입국장에만 들어서도 톡톡 부러질 듯했던 긴장이 뜨거운 육수에 담긴 국수처럼 한순간에 풀어진다.
더 이상 몰라서 헤매지 않아도 되니 집으로 오는 길은 멀어도 두렵지 않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앉으니 편안한 나른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밤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곤해서 잠이나 청해 볼까 하는데 내가 앉은 앞 좌석에 외국인 청년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와서 자리 정리를 하는데 신경이 온통 그곳으로 간다.
그는 활동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아이보리 캐리어를 가지고 탔다. 열차 내의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았으나 너무 커서 선반 밖으로 가방이 삐져 나와 있었다. 내가 봐도 불안해 보이고, 그도 그랬는지 계속 이리저리 손을 보고 있었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며칠 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캐리어 때문에 걱정하던 내가 생각났다. 그래서 밖에 캐리어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고맙다며 가방을 옮겨 놓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밖에 두어서 그런지 그는 종종 뒤를 돌아보며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빙긋 웃었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기차에 별도의 공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앉은 좌석 옆에 가방을 두고 탔지만, 만약 한국처럼 외부의 분리된 공간에 가방을 두었다면 나도 그 청년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속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면서 역에서 기차가 멈추어 설 때마다 그는 몸을 돌려 가방이 있는 곳을 쳐다보거나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며 가방을 확인하고 오는 것 같았다.
3시간 동안 같은 기차를 타고 오면서 그와 나는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이었을 것이다. 불안해 보이는 그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그랬듯이 그 긴장은 어쩔 수 없는 그의 몫이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이방인이 치러야 할 당연한 부담일 것이다.
이처럼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긴장 속에 나를 던져 놓는 일이다. 반대로 익숙하고 무탈한 일상이 편안하기는 하나 매너리즘에 빠져 무감각해질 수 있다.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가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럴 때 여행은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탈출구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긴장에서 생활하다 보면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함이 얼마나 그리운지 절감하게 된다. 내가 머물던 자리가 주었던 안온함이 불쑥 생각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꾸 그 낯선 긴장 속으로 떠나는 것은 편안함이 주는 타성에 젖고 싶지 않아서 이다.
사는 동안 늘 그랬다.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두렵고 주저하긴 해도 도망치지 않으려고 했다. 느리고 작은 걸음이지만 내 보폭에 맞추어 조금씩 나아가 보려고 했다. 왜냐면 그것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은 백수이지만 여전히 나는 긴장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를 생각의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하는 일이다. 자극이 없으면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면 정체된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붓이 자유로울 때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생각이 자유로울 때 장벽이 없는 사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스치는 바람도 마음에 걸치고 싶지 않다. 몸뚱이는 티셔츠 두 장, 바지 두 장으로도 살아지던데 마음은 왜 그리도 걸리는 것들이 많은 지......
또다시 생각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려고 하면 나는 또 낯선 어디쯤에선가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비우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