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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an 20. 2024

공평하지 않은 순서




추운 날씨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매번 갈까 말까 씨름을 하다가 겨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요가를 하러 갔다. 마치고 나면 개운해서 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집을 나서기까지 추운 날씨가 큰 장벽이다. 겨우 어르고 닦달을 해서 도착을 하면 20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요가장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으면 바로 앞에 있는 사물함을 찾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평일 아침이라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 마치고 가는 사람 모두 활기차 보이는 것이 보기 좋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다 보면 그 시간대에 보는 사람도 비슷하다. 그중에 유독 눈을 끄는 한 사람이 있다. 반 백발의 그녀는 다리가 불편한 지 걷는 것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걸음걸이나 두툼한 뱃살이 아니더라도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불편한 몸으로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하러 오는 그녀의 부지런함에 볼 때마다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수영을 마치고 와서 사물함에 샤워용품을 넣고 나서 그녀는 30센티 정도 되는 봉을 흔들면 쫙 펴지는 지팡이를 짚고 유유히 센터를 빠져나가곤 했다. 








요술 봉처럼 펼쳐지는 지팡이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요즘은 시절이 좋아 저렇게 휴대하기 좋은 지팡이도 있구나 싶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지팡이를 짚기 싫어했던 친정 엄마에게 하나 사드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날도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센터에 도착해서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다른 날 보다 일찍 마쳤는지 그녀가 요술봉 지팡이를 짚고 통화를 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엄마~~~, 이제 수영 마치고 가는 길에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그녀의 목소리는 크고 생기가 돌았다. 엄마에게 통화하는 것이 신바람 나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마치 아직도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더 크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녀가 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아직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나는 아직 다리도 절지 않고, 뱃살도 나오지 않고, 나이도 그녀보다 더 작을 것 같은데 엄마가 없는 것이 새삼 억울해서 어디에라도 따지고 싶었다. 







문득 그녀를 따라 하고 싶었다. 나도 운동을 마치고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기꺼이 반겨주는 정겨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무런 용건이 없어도 "그냥 전화했지......" 하는 싱거운 시작으로 한동안 수다를 떨어보고 싶었다. 이젠 백수가 되어 시간도 많은데 엄마를 찾아갈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공평하지 않은 순서에 쏟아낸 치기 어린 나의 분노(?)를 밟고 그녀는 긴 복도를 개선장군처럼 걸어갔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내 속을 자꾸 후빈다. 갑자기 운동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도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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