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도 해마다 여름이면 엄마처럼 고구마 줄기를 볶았다. 아이들도 잘 먹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해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식구들도 제각각 뿔뿔이 흩어지고 평일에 밥 먹을 일이 없다 보니 잘 해지지 않았다. 올 들어 유난히 입맛을 잃어 고생하던 차에 고구마 줄기 볶음이 있으면 밥을 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시장에 갔다. 조금 비싸더라도 데쳐서 파는 것이 있어서 예전에는 꼭 그것을 샀는데 요즘은 찾는 사람이 잘 없는지 데쳐 놓은 것도 없고, 껍질을 까 놓은 것도 없다. 그나마 한 단만 달랑 남아 있어 그거라도 가져와야 했다. 아무리 입맛을 잃어도 백수가 아니었으면 안 먹고 말지 하고 절대 껍질째 사지 않았을 텐데,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이래서 참 좋다.
묶여 있던 고구마 줄기를 거실에 헤쳐 놓으니 양이 많다. 언제 다 깔까 싶다. 혼자서 쭉쭉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언니, 오빠, 엄마가 없다. 이제는 엄마만큼 손이 빨라서 혼자서도 잘한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고구마 줄기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데, 내 안에서 무언가 같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말라 비틀어진 그리움일까? 눈치 없는 고양이 녀석이 자꾸 옆에 와서 훼방을 놓는다.
어느새 뽀얀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 줄기가 내 앞에 수북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속내를 감추려고 괜히 서둘러 주섬주섬 껍질을 긁어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