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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17. 2022

고구마 줄기에 대롱대롱





해마다 여름이면 친정엄마는 고구마 줄기를 볶아주셨다. 마른 멸치와 젓갈을 넣어 진하게 하기도 하고, 맑게 하기도 했지만 어느 것이든 다 맛있었다. 고구마 줄기 볶음이 나오는 날에는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하고, 그냥 먹어도 언제나 밥도둑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먹기 위해서는 고구마 줄기를 까는데 인력 동원이 되어야 했다. 알뜰한 엄마는 언제나 껍질이 있는 것으로 몇 단을 사 오셨다. 그것이 훨씬 양이 많고 싸니까 그러셨을 것이다. 고구마 줄기 두어 단을 풀어헤쳐 놓으면 마루가 그득했다.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를 빼고 언니 오빠와 둘러앉아 까다 보면 하세월이었다. 까도 까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것이 다리에 쥐가 날 즈음이면 어느 정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고, 후딱 저녁밥을 안쳐 놓고 손이 빠른 엄마까지 합세를 하면 급속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오랜 시간 쪼그리고 앉아서 하다 보면 오금에 땀이 차이고, 다리가 뻐근하지만 수북이 쌓인 고구마 줄기 껍질 옆에는 우리가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도 소복이 쌓여 있었다.






© jthorson2, 출처 Unsplash





결혼하고 나도 해마다 여름이면 엄마처럼 고구마 줄기를 볶았다. 아이들도 잘 먹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해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식구들도 제각각 뿔뿔이 흩어지고 평일에 밥 먹을 일이 없다 보니 잘 해지지 않았다. 올 들어 유난히 입맛을 잃어 고생하던 차에 고구마 줄기 볶음이 있으면 밥을 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시장에 갔다. 조금 비싸더라도 데쳐서 파는 것이 있어서 예전에는 꼭 그것을 샀는데 요즘은 찾는 사람이 잘 없는지 데쳐 놓은 것도 없고, 껍질을 까 놓은 것도 없다. 그나마 한 단만 달랑 남아 있어 그거라도 가져와야 했다. 아무리 입맛을 잃어도 백수가 아니었으면 안 먹고 말지 하고 절대 껍질째 사지 않았을 텐데,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이래서 참 좋다.

묶여 있던 고구마 줄기를 거실에 헤쳐 놓으니 양이 많다. 언제 다 깔까 싶다. 혼자서 쭉쭉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주 보고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언니, 오빠, 엄마가 없다. 이제는 엄마만큼 손이 빨라서 혼자서도 잘한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고구마 줄기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데, 내 안에서 무언가 같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말라 비틀어진 그리움일까? 눈치 없는 고양이 녀석이 자꾸 옆에 와서 훼방을 놓는다.

어느새 뽀얀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 줄기가 내 앞에 수북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속내를 감추려고 괜히 서둘러 주섬주섬 껍질을 긁어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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