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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09. 2022

남다가 밑지고 마는.....





출국 하루를 앞두고 나트랑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데 큰 아들한테서 문자가 왔다. 내가 귀국하는 금요일 연차를 내서 공항에 마중을 나가려고 하는데 몇 시까지 가면 되겠느냐는 요지였다. 세상이 뒤집어질 내용이었다.

짐이 많이 무거우면 택시를 타고 해 볼만하다 싶으면 공항에서 이어진 경전철을 이용하곤 했다. 12KG 정도의 캐리어가 오르내리는 계단에서 약간 부담이 되긴 하지만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때로는 "도전" 같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무사히 도착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뿌듯해하는 맛도 있어서 이번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마음의 가닥을 잡고 있던 터였다.


"엄마 때문에 일부러 연차를 낸 거야?"
"그건 아니고요. 회사 행사가 끝나서 하루 쉬기도 하고 겸사겸사해서요."
"아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라 출근 시간대에 나와야 하니까 차가 밀려서 일찍 서둘러야 돼. 그냥 택시 타거나 지하철 타면 되니까 쉬어."
"괜찮아요. 이럴 때 아들 노릇을 해야죠. 하하하하"










꿈에도 생각지 않은 황송한 제안을 받았지만 그다지 마음이 기울지는 않았다. 아침 8시 10분 도착 예정이라 짐 찾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워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출발해야 하는데 밤늦게 잠을 자는 아들은 아침잠이 많아 무사히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이미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해 놓은 터라 굳이 그 시간에 아들 녀석까지 불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사양을 했는데도 무슨 생각에서 인지 굳이 마중을 나오겠다는 녀석에게 하는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8시 10분 도착 예정이던 비행기가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짐을 다 찾고도 8시 10분 전이다. 아들이 어디쯤 오고 있나 싶어 전화를 했다.


"............."
"............."
"여.... 보.... 세.... 요....."


몇 번의 신호가 가고 한참 후에야 전화를 받은 아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깊은 잠에 짓눌린 목소리였다.

"아들, 어디야?"
"집인데요?"
"아직 집이야? 엄마 도착했는데?"
"벌써요? 여덟 시 반 정도 되어야 나오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 네가 집에 있으면 안 되는 시간이지 않아?"
"지금 갈게요"
"택시 타고 갈 테니까 그냥 있어"

언제나 긴가민가 불길한 감은 찰떡같이 잘도 들어맞는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다음 날 토요일 아침 8시를 갓 넘긴 시각, 장거리 연애를 하는 아들 녀석은 일찌감치 일어나 샤워와 꽃단장을 마치고 KTX를 타러 집을 나서며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아들~~~~ 잠깐만"
"네?"
"늙으신 어머니한테는 지가 먼저 한 약속도 대놓고 펑크를 내더니, 여자 친구 만나러 간다니까 일찌감치 일어나서 꽃단장하고 때 맞춰서 잘 나가네?"
"푸하하하"
"엄마 일기 쓴다~~~~? 나는 오늘 아들 때문에 참 많이 슬펐다.....라고 콱! 일기 쓴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그래. 잘 갔다 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를 똑 닮은 아들 녀석을 보면 무심했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도둑년이 낳은 아들이 도둑놈인 것은 당연한데 내가 왕년에 도둑년이었던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자식은 그러라고 수문장처럼 곁에 있는 것 같다. 내 어머니에게 오지게 남는 장사를 했던 것을 이제 내 자식에게 밑지며 퍼주고 있다. 살아보니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말쑥하게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것과 똑같은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을 어머니의 마음이 이제야 잡힐 듯, 잡힐 듯 손에 잡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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