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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r 09. 2024

백수의 방학




3월 첫 주가 지나가고 있다. 2월 마지막 한 주는 그동안 수강하고 있던 세 강의가 모두 종강이 되어 오랜만에 휴가를 맞은 기분이었다. 화요일에는 체육센터까지 휴무일이라 저녁에 요가와 수영도 없어 날아갈 것 같은 한 주였다. 

백수가 모처럼 누리는 천금 같은 방학이었다. 퇴직하고 나서는 연휴가 없어졌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의 설렘이나, 연휴의 기다림도 신분증을 반납하면서 함께 돌려주었고, 새 달력을 펼치면 빨간 날부터 세어보던 경건한(?) 의식도 이미 사라졌다.









일 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빨간 날의 퍼레이드를 나는 그저 무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짜 놓은 빽빽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지만 어쨌든 나는 공식적인 휴가를 즐기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백수에게 주어진 단 일주일의 방학 같은 시간에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참으로 아찔한 희열이었다.

누가 나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백수계(?)에서 도태되는 것도 아닌데 오랜 습성에 묶여 여전히 생활하던 대로 지내고 있었다.  









"백수의 방학"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1년 365일이 방학이고, 휴가인 백수에게 꿀맛 같은 이 일주일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어쩌면 소중한 씨알 하나쯤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단지 내가 찾지 못하고, 알지 못했을 뿐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찾아서 뿌리라고 나의 곳간 어딘가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백수가 되기 전에는 백수의 여유로운 발뒤꿈치가 한없이 부러웠는데, 백수가 되고 나서는 그렇지 않은 이들의 황금 같은 연휴를 탐내고 있었다. 강 이편에서 언제나 저편을 갈망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이 도둑놈 심보 같은 탐욕(?)이 미안할 즈음, 백수도 포상 같은 방학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안에서 누리고 취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느냐에 따라 숨겨진 씨알을 찾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지를 태울 것 같은 뙤약볕에도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서늘한 바람이 일고, 땅을 바다로 만들 것 같은 기세의 세찬 빗줄기가 퍼붓는 사이에도 마알간 하늘이 얼굴을 내미는 것이 비단 자연의 이치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수확기를 위해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기에 앞서 아직 나는 뿌릴 씨앗을 찾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초보 백수이다. 다음에 맞을 더 나은 짜릿한 방학을 위해 이번 주부터 다시 백수의 생활에 풍덩 뛰어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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