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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y 28. 2024

노인의 공방




집에서 가까운 극장을 걸어서 가다 보면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야 한다. 그곳에서 주택의 차고를 개조한 작은 공방이 유독 눈에 띈다. 목공 작업을 하는 곳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종종 그곳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가끔 아내의 요구 사항에 맞춰 수정 작업을 하기도 하고, 혼자 작업에 몰두하고 있기도 했다. 키가 작은 할아버지가 서면 머리가 닿는 것을 겨우 면할 정도의 낮고 작은 작업장이지만, 빈틈 하나 없이 빼곡하게 나무와 공구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10여  년 전, 한때 정신없이 가구를 만들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맡아도 싫증 나지 않는 나무 냄새, 단 하나도 같지 않은 나이테의 매력에 빠져 퇴근하고 늦은 밤까지 공방에서 작업을 해도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서 생기가 더 넘쳤다.

그러나 집에 더 이상 가구를 들여놓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가구 만드는 것을 멈추어야 했다. 그때 만들었던 가구를 아직도 너끈히 쓰고 있다. 볼 때마다 나이테에 스며든 그날의 열정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다. 목수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지만 현실에 막혀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다. 그 후로도 나무판자를 보면 아직도 다 하지 못한 갈증이 솟구친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공방은 술꾼이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골목 어귀의 작은 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다. 나도 저런 작업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지나칠 때마다 했다. 공방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다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허둥지둥 시선을 거두어야 했다. 

그 앞에서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공방 구석구석을 훑으며 지났다. 사이즈별로 가지런히 걸어 놓은 톱과 갖은 공구들은 그 어느 명품도 흉내 내지 못하는 강렬한 유혹을 내게 보냈다.  









승용차 한 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차고 같은 곳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어느 화려한 성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몰두할 수 있고,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기쁘게 하는 것과 더불어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그 나이에도 온전히 몰두하고 미칠 수 있는 대상과 장소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 뼘도 허투루 비워두지 않고 빼곡히 채운 작업장을 보며 할아버지가 그곳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사는 동안 무언가에 열광해 본 적이 있는가? 원도 한도 없이 한껏 그것에 미쳐 보았는가? 그래서 한 점 후회 없이 다 태워 보았는가? 하고 물어보면, 매 순간 그랬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럼에도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는다. 지나고 보니 찰나이고 만 60여 년이 그저 짧게 타고 만 성냥불 같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그 공방은 성냥개비를 그득하게 쟁여 놓은 화로 같은 곳일 것이다. 계속 불씨를 이어 가고, 그 불씨가 할아버지 삶을 활력 있게 만드는 탄성이 되어 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맞은편 아파트 옥상에 붉은 노을이 걸려있다. 오늘도 태양은 하루를 온전히 다 태우고 고층 아파트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하루를 태우고, 나를 태우게 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서 할아버지의 공방 같은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조용히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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