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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y 27. 2024

수영장에도 품위와 인격이......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수영장에 간다. 평소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연습도 하고, 운동도 하니 일석이조다. 평일의 수업은 등급별로 레인을 나누어 하지만 주말에는 자유 수영이라 구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력 차가 섞여 수영하는 데 지장이 많았다. 센터 측에서도 문제를 인지했는지 어느 날 레인 앞에 커다란 입간판을 두어 등급을 구분해 놓았다. 걷기, 발차기, 초급, 중급, 고급, 그중에서도 빠르고 느린 정도까지 세세하게 나누어 놓았다. 그동안에 느꼈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줄 알았다.




© thepeoplesdigital, 출처 Unsplash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일부러 구분해 놓은 입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해당 레인에 맞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일부러 앞사람을 한참 보내 놓고 출발하거나, 느린 앞사람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방향을 바꾸어 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뒤에서 이어지는 자신에 대한 배려나 피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하게 느린 템포로 꿋꿋이 몇 바퀴씩 도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towfiqu999999, 출처 Unsplash




초, 중, 고급으로 구분 지어 놓은 데서 스스로 낮은 등급임을 드러내는 것이 싫어서일까? 그래서 빠르고 높은 레인에 나를 올려놓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빠르고 강한 수영보다는 부드럽고 정확한 동작을 선호하다 보니 빠른 레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뒷사람이 바싹 쫓아오면 급한 마음에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어 여유롭게 하자면 초, 중급 레인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어느 레인이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편하게 연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rockthechaos, 출처 Unsplash




굳이 레인 앞에 등급을 구분해 놓은 것은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는 표시일 텐데 번번이 가당찮은 뚝심(?)으로 묵살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인격과 품위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 세워놓은 입간판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몸에 배어 뿜어져 나오는 그 사람의 체취 같은 것이다. 굳이 고급 레인에 서 있지 않아도 고급스러운 품위가 풍기는 것은 넉넉한 자존감에서 나오는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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