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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Sep 19. 2024

잊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형님이 자기 집이 편하다고 가고 싶다고 하네요"

양치질을 하고 나오는데 처음에는 둘째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했다. 

"뭐라고?"
"형님이 자기 집에 가고 싶데요"
"왜? 게임이 하고 싶어서 그래?"
"하하하, 그것도 그렇고, 여긴 내 집이 아니니까 왠지......"



하고 말끝을 흐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몇십 년을 살았던 친정도 결혼하고 다니러 가면 하룻밤 자는 것이 예전의 내 집 같지 않았으니 녀석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 어떤 맘인지 알겠다. 그럼 준비해서 출발해"
"어머니, 우리 가고 나서 울지 마세요~~~"


두 아들이 탄 차가 지하 주차장을 돌아 나갈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작은 녀석이 남기고 간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살짝 걱정을 했지만 생각 외로 씩씩하게 녀석들을 보냈다. 집으로 들어와 청소를 시작했다. 녀석들의 흔적을 지우고 원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정리를 했다. 

깔끔하게 치워진 조용한 실내에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안락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한동안 그림을 그렸다. 붓 끝의 섬세한 표현이 되살아나면서 나도 내 삶의 궤적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부산 집에 도착한 큰 녀석이 영상 통화를 해왔다. 짐 정리를 어떻게 했는지 사진 몇 장 찍어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아예 영상으로 집 안 구석구석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내 손 길이 닿고, 손 때가 묻었던 예전에 내가 살던 그곳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래, 그래..... 하면서 켜켜이 박혀 있던 도깨비풀 가시 같은 그리움이 떨어져 나갔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보고 싶던 그곳이 아니었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 누워 있던 빈 병상이라도 보고 오면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요양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엄마를 만날 것 같은 기대를 안고 갔다가 어느새 다른 환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며 비로소 마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아들 내외가 살 집으로 달라진 옛집을 보고 나서 더 이상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님을 받아들이며 떨구어 놓았던 마음을 쓸어 담았다. 한동안 비틀거렸던 마음속에 작은 추가 생긴 것 같다. 


'그래, 그리움은 어쩌면 잊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없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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