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6)
보스니아 전쟁의 기억

모스타르

by 파란 해밀

2016. 06. 05.

보스니아 모스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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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하나로 모스타르를 가보기로 했다. 여행 일정에 넣어 이 곳에서 숙박을 하고 싶었으나 제한된 일정이 빠듯하여 건너뛰었지만 미련이 남는 곳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가 여행사 앞에 모스타르 투어가 눈에 띄어 일일투어를 신청했다. 함께 간 일행들과는 각기 흩어져 여행을 하기로 해서 혼자 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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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로 픽업하러 온 승합차를 탔다. 내가 탈 자리 하나만 비워진 채 모든 좌석은 이미 다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스타르를 찾는 관광객이 의외로 많다.


다들 연인, 가족 아니면 친구들이라 혼자 온 사람은 나와 호주에서 온 돌싱녀 이렇게 두 사람뿐이다. 혼자 온 사람끼리 단짝이 되어 한동안 함께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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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는 두브로브니크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차 창 밖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지겨운 줄 모르고 갔다. 북적이는 시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 모스타르 다리 입구부터 양 갈래로 늘어선 가게와 골목마다 많은 인파들로 북적인다.


가이드는 다리 위에서 이 곳의 유래와 다리의 역사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몇 시까지 차로 돌아오라고 알려주고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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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모스타르에서 가장 핫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일일투어로 오다 보니 다른 곳을 여유 있게 둘러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디서나 이 다리가 모스타르를 상징하는 것처럼 소개되는 것을 봐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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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둘러보다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자리 너머 골목 여기저기에도 손뜨개 소품들과 시트들이 많이 나와 있다. 팔리기는 하는지 밥을 먹으며 보고 있으니 수완이 좋은 아주머니는 적당한 가격 흥정 끝에 물건 하나를 판다. 내가 판 것처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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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해서 구경도 하고 하나를 사볼까 고민도 했지만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선뜻 살 수가 없다. 언제쯤 가방 무게 걱정하지 않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 편히 살 수 있을지......


여행할 때마다 가방이 상전이라 최소한의 짐만 가져가다 보니 무게가 있는 기념품은 늘 눈요기로만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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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다시 눈으로 쇼핑을 하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다시 다리로 돌아왔을 때도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관광객들로부터 관람료 성격의 일정 금액이 모이면 다리 위에서 다이버는 50미터 아래의 강으로 뛰어내린다.


그것을 보려고 사람들은 한동안 기다리지만 다이버는 선뜻 뛰어내리지 않는다. 할 듯 말 듯 뜸을 들이며 조금이라도 더 돈이 모이길 유도한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불편해서 다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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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다리 근처 2층에 작은 카페가 있어 올라가 보았다.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터키식 커피인데 맛이 강해서 내 입에는 영 맞지가 않다.


맞은편 자리에는 몇 사람이 살집 좋은 중년의 남성을 에워싸고 테이블에 앉아 웅성거린다. 잠시 후, 다이버 한 명이 카페로 올라와 그 남성에게 다가가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남성이 다이버에게 10유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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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관광객들이 다리에서 1유로를 건네고 그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뛰어내리는데 반해 그 남성은 10유로를 개별적으로 주었으니 그에게 인사를 하러 올라온 것이다. 마치 카페는 본부석인 셈이다. 아마도 그 카페 주인이 찾아온 손님과 다이버의 중간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다리로 돌아간 다이버는 뛰어내리기 전에 돈을 준 남성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벌거벗은 곡예사처럼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진다. 10유로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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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 차례 물로 뛰어내리는 것이 몸에 충격을 주어 훗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모스타르 젊은이들에게 이 다이빙은 어쩔 수 없는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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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는 장차 다이버를 꿈꾸는지 많은 어린아이들이 얕은 절벽에서 연신 뛰어내리고 있다. 그들이 뛰어내린 물속에 커다란 파문이 인다. 내 안에는 그 보다 더 큰 것이 자꾸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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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묘기라 하고 보기에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카페를 나왔다. 바로 옆에 작은 사진 전시관이 있다. 전쟁의 흔적을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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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에도 전쟁의 상처가 크다. 사진만으로도 그 날의 공포와 참혹함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짐작이 간다. 리셉션 데스크에 근무하고 있는 젊은 여직원도 전쟁 때 부모님을 잃었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이지만 커다란 포격 소리와 전쟁을 피해 어딘가로 숨어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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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크든, 작든, 내가 전쟁을 일으켰든 침략을 당했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안아야 하는 전쟁의 상처는 헛된 야욕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전쟁 중에 파괴된 저 다리는 지금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로 재건되어 마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뻔뻔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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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공을 차는 천진한 소년의 발끝에 야무진 열망이 뿜어져 나온다. 지금쯤 공 차는 실력이 더 늘었는지, 그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지...... 아니면 어느새 등이 굽은 노인이 되어 어릴 적 뛰어놀던 저 기억도 가물가물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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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일일투어라 사진전시회를 끝으로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돌아가야 했다. 사진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저 다리 위의 용감한 다이버나 보고 돌아갔을지 모른다. 전쟁의 잔상은 리셉션 여직원처럼 사람들 가슴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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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막힐 것을 염두에 두고 일찍 모스타르를 출발했는데도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전날 길을 안내해준 호텔 기념품 매장에서 근무한다는 크로아티아 아가씨와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차가 늦는 바람에 약속 장소에 있는 힘껏 달려가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그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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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를 주고받지 않아 늦은 도착을 알릴 방도가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괜히 기다리다가 실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원망하며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한동안 주변을 서성이며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그녀를 찾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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