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5) 에메랄드 빛 낙원
플리트비체를 걷다
2016. 06. 01.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플리트비체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국립공원 내에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맛이나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다는 평이 많아 샌드위치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가기로 했다. 마침 가는 길에 슬루니 숙소 호스트가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가 있어 그곳에 들러 샌드위치를 샀다.
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셔틀로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구가 나온다.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크로아티아에도 선녀와 나무꾼이 있었다면 분명 이 곳, 플리트비체에 선녀가 목욕하러 왔을 것이다. 푸른 녹음과 어우러진 에메랄드 물빛은 자연이 일부러 의도한 색이었을까? 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놓치기 아까운 환상적인 풍경에 자꾸 눈과 발이 돌부리에 걸린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둔 듯, 있는 그대로인 플리트비체 공원은 사람들의 눈을 송두리째 사로잡는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한동안 정신이 팔려 인파에 휩싸여 가던 중 뒤에서 걸어오던 미국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유학 중인데 방학이라 한 달여간 배낭여행 중이라고 한다.
플리트비체처럼 싱그러운 청년이다. 20대 초반의 창창한 그의 꿈과 미래를 들려주었다. 무한한 도전과 가능성이 가득한 그의 젊음이 잠시 부럽기도 했다. 시행착오와 크고 작은 실패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눈에 담긴 희망은 에메랄드빛 물빛을 받아 더욱 빛이 났다.
주로 텐트에서 숙박을 하다 보니 휴대폰 충전을 못했다며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사진 몇 장을 찍어 나중에 그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한참 동안 같이 걸으며 그와 말동무, 길동무를 했다. 보트를 타고 내린 곳에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벤치가 늘어서 있다.
그곳에서 나는 샌드위치를 먹고 출발하기로 하고 그는 곧바로 떠났다.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만큼 나를 들뜨게 한다.
지루한 줄 모르고 걸었다. 힘든 줄도 까맣게 잊고 걸었다. 빤히 보이는 길을 다섯 시간 내도록 걸으라고 했다면 제대로 걸을 수 있었을까? 새로운 장면 장면으로 이어지는 영화 같은 길을 걸었다.
구불구불 휘어지고 돌아가는 길은 걷는 이로 하여금 전혀 힘든 줄 모르게 한다. 이 길을 돌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저 길을 감아 나가면 또 어떤 풍경일지 기대와 설렘으로 이어진다.
물 따라, 나무 따라 평탄하고 소박하게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 나온다. 그제야 다리가 뻐근해온다. 그럼에도 전혀 힘든 줄 몰랐던 것은 아마도 플리트비체에 깊이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가볼 기회가 된다면 가보지 않은 다른 코스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걸어보고 싶다. 오랜 시간 혼자 걸어도 정취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걷기 좋은 천국이 바로 플리트비체일 것 같다.
다음 약속을 이곳 돌 틈바구니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고 나는 천국을 천천히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