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약속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에 있는 거리라 걸어 다녀도 좋고 버스도 편리하다.
성벽 투어를 비롯한 박물관과 전시장 입장이 포함된 티켓을 한국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해갔는데 버스 이용료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사용하기에 충분했고 여러모로 편리했다.
올드타운 입구에서 내려 성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동화책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녀만 보아도 하루가 금방 갈 것 같다.
아마도 그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빈티지한 주황색 지붕은 두브로브니크의 정취를 더한층 느끼게 한다. 아기자기한 골목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단 성벽 투어부터 하기로 했다.
지금은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이 성벽 또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저항으로 하나, 둘 쌓은 것이니 그저 마음 편히 돌아봐지지만은 않는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 저토록 긴 성벽을 에둘러 쌓기까지 그들도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지..... 성벽 뒤로 보이는 바다는 그날의 아픔을 모른척하고 더없이 잔잔하기만 하다.
성곽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사람들이 모여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궁금해서 내려보니 아랫 편 바위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미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곳에 앉아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바위 끝에 서서 몇 번이고 뛰어내리려고 시도를 했지만 선뜻 뛰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심지어 위에서 성벽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까지도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합세해 모두 응원을 하고 있다.
나도 똑같은 마음으로 그녀가 뛰어내리기를 기대하며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망설이더니 결국 그녀는 용감하게 바다로 뛰어내렸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전부 축하의 함성을 지르며 대단한 빅게임을 본 것처럼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녀가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성곽에 기대어 있던 다른 여행객들도 다시 가던 길로 향했다. 실내 수영장 풀에서도 뛰어내리지 못하는 나에 반해 그녀는 뛰어내리기까지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이 곳 두브로브니크에서 큰 자신감을 선물로 받아 갔을 것이다.
성곽에서 내려다보이는 올드타운은 여전히 아름답다. 보이는 것이 모두 지붕뿐인데 그래도 예쁘다. 주황색이 저렇게 예쁜 색이었나 떠올려본다. 그 어느 곳 하나 거스를 데가 없는 색이다. 더구나 크림색 벽이나 바닥과 잘 어우러져 더한층 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좁다란 골목은 마치 깊은 골짜기 같다. 얼기설기 널어놓은 빨래가 집과 집을 이어주는 저들만이 소통하는 손짓 같아 보인다. 작은 쪽창을 열고 내다보면 인사하는 앞 집 사람 이마와 닿을 듯하다.
과하게 꾸미지 않고 그저 가지런히 돌을 놓아 만든 마당이 하도 정겨워 보여 한동안 바라보았다. 올드타운의 골목은 마치 미로처럼 좁다랗고 많다. 한참을 걷다가 눈에 익은 곳이다 싶어 생각해보면 조금 전에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두 번 간 곳이면 어떠하리? 자꾸 가도 정겹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훌쩍 간다. 골목만 헤집고 다녀도 금방 간다. 하도 골목이 많아 때로는 내가 찾고자 하는 전시장이나 박물관을 찾을 때 애를 먹기도 한다.
두브로브니크를 떠올리면 여행 간 곳 중에 가장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올드타운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았다.
얌전하고 착해 보이는 아가씨가 눈에 띄어 물어보았는데 마침 그녀도 나와 같은 버스를 탄다고 한다. 내가 내리는 정류장을 알려주었고, 우리는 다음 날 저녁 올드타운 광장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음 날 모스타르 투어를 마치고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차가 막혀 1시간가량 늦게 도착했다. 투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열심히 달려갔지만 만나기로 했던 장소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방인과의 약속을 위해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려주겠는가?
모스타르 투어를 마치고 예정된 시간에 무사히 잘 도착했더라면......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거나 그녀의 번호를 알아서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할 수 있었다면......
올드타운에서 숙소가 멀지 않아 약속을 정하고 나니 이미 내려야 할 정류장이라 미처 번호를 교환하지 못한 것이 불찰이다.
약속한 대로 그녀를 만났다면 두브로브니크 바다가 잘 보이는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올드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집이 있다던 그녀는 아직도 그 호텔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이 글로나마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