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8)
로푸드 섬에서 만난 사람

두브로브니크에서 마지막을......

by 파란 해밀


2016. 06. 07.

로푸드 섬에서 만난 사람들


20160605_120812.jpg


두브로브티크 마지막 날, 크로아티아를 떠나기 하루를 남겨 놓은 날이다. 자그레브를 시작으로 슬로베니아를 거쳐 위에서 아래로 크로아티아를 훑으며 이 곳까지 왔다.


마지막 날은 특별한 계획 없이 무작정 올드타운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올드타운 여기저기를 다시 꼼꼼히 돌아볼 심산이었다.

20160605_120803.jpg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올드타운 쪽으로 가고 있는데 섬 투어 상품을 안내하는 직원이 보여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급작스럽게 섬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점심 식사를 배에서 제공해주고 섬 세 곳을 둘러보는 상품이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경에 돌아오는 하루 투어이다.


20160605_121739.jpg


일찌감치 사람들은 다 승선을 하고 배가 떠난 터라 난데없이 어디선가 나타난 운전기사가 나를 차에 태우고 다음 선착장까지 데려다주었다. 거의 007 작전이었다. 있는 대로 속도를 내어 겨우 선착장에 도착해서 기다리던 있는 배를 탔다.


20160605_122049.jpg
20160605_114945.jpg


많은 여행객들이 이미 배에 있었고, 빈자리에 가서 앉아 숨을 돌리고 둘러보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골고루 있다. 마침 옆 자리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남자 대학생이 친구들과 여행 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20160605_132948.jpg


세 개의 크고 작은 섬을 둘러보는데 그중에 로푸드 섬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섬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혼자 섬 이 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백발의 할머니가 선텐을 즐기고 있다. 상반신을 거의 다 드러내고 볕이 잘 드는 둑에 앉은 그녀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20160605_123100.jpg
20160605_133039.jpg


마침 좀 쉬었다 갈 겸 그녀 곁에 앉았다. 햇볕이 이렇게 좋은데 왜 긴 옷을 입고 있느냐? 자기처럼 옷을 벗고 햇빛을 즐기라고 한다.


습도가 높지 않아 햇빛은 따가웠지만 더운 줄 모르고 긴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런 내가 딱해 보였나 보다. 그 날의 햇살은 눈이 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런 햇살이었다.


20160605_123012.jpg


바지 위로 삐져나온 뱃살이나, 온몸에 깨를 뿌려놓은 듯한 잡티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멋지게 햇빛을 즐길 뿐이었다. 멋진 선베드가 아니어도, 튼튼한 돌침대(?)에 타월 한 장 얹으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세팅이다.


60을 넘긴 나이에도 그녀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활기차다. 이 섬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20160605_122811.jpg
20160605_122855.jpg


섬이면서도 바다 특유의 짠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굳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목마르면 해변의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셔도 될 정도로 물이 맑다.


며칠 아무것도 안 하고 죽치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상이 돌아가거나 말거나 까맣게 잊어버리고 며칠 처박혀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20160605_130126.jpg


뜨거우면 물에 들어가 헤엄치고, 힘 떨어지면 선베드에 누워 하늘을 이불 삼아 덮고, 그래도 허기지면 달콤한 과일 하나 베어 물면 나무꾼의 애간장을 녹인 선녀가 부러울까? 하루아침에 팔자를 고친 신데렐라도 그런 나를 시기하지 않을까?


20160605_124752.jpg


계획에도 없던 섬 투어를 갑자기 하다 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부랴부랴 오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레스토랑 직원에게 섬 이름을 물어보았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식당은 한가로워 보였다. 보이쉬한 그녀는 기꺼이 꼼꼼하게 섬 이름을 적어준다. [Lopud] 섬이라고......


20160605_133545.jpg
20160605_133911.jpg


조용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섬 한 바퀴를 사부작사부작 돌다 보면 어느새 배로 다시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바다는 순해서 마치 호수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20160605_153703.jpg


배에서 같이 점심을 먹은 크로아티아 모녀와 같이 섬을 걸었다. 자다르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이 곳 두브로브니크 부킹닷컴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딸을 엄마는 엄청 자랑스러워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음식을 씹는 동안이 아니면 딸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딸도 살뜰히 엄마를 챙겨주는 모녀의 모습이 부럽다.


20160605_134251.jpg
20160605_134311.jpg


이 모녀처럼 따뜻한 여행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친정엄마를 보낸 주홍글씨가 가슴에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아이들도 웬만큼 자라고 조금 여유가 있을만하니 엄마는 인생의 무거운 등짐에 허리를 내어주고 1년을 누워만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20160605_153318.jpg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더니 엄마는 야속하게도 그걸 기어코 실천을 하시고는 막내딸 가슴 한 켠을 야무지게 꼬집어 놓고 가셨다.


20160605_170304.jpg
20160605_170406.jpg


자다르에서 혼자 여행 왔다는 그녀는 오전에 내가 급하게 달려와 배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며 먼저 아는 척을 한다. 혼자 여행 온 여자들끼리 한동안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니다 보니 혼자 다니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그녀와 어느새 한 개, 두 개 공통점이 찾아진다. 조용하고 과하지 않아서 나도 어느새 그녀가 오랜 친구처럼 점점 편하게 느껴진다.


20160605_154613.jpg
20160605_171439.jpg


여행을 나설 때 사람들은 혼자라서 심심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막상 혼자 다니다 보면 혼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편하게 접할 수 있어 오히려 좋을 때가 많다.


20160605_153646.jpg
20160605_171659.jpg


혼자라서 마음 가는 대로 여행할 수 있어 자유롭듯이, 그 자유로움이 좋아 혼자 길에 나선 이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 생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행의 가장 진한 맛이 아닐까?


이전 08화(크로아티아 7)  지키지 못한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