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다르
숙소에 짐을 풀기 무섭게 올드타운으로 나갔다. 어딜 가나 올드타운은 볼거리가 많다.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잡은 것은 벽을 따라 진열해 놓은 손뜨개들이다. 사람이 다가가도 주인은 다들 그 앞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양말, 모자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테이블보와 각종 옷들이 수더분하게 널려 있다. 가격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잘 안다. 손뜨개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배어 있는지......
구정 뜨개실로 받침대 하나 만들기까지 실이 지나간 자리와 바늘을 쥔 손가락이 움푹 파인다. 그 자리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되어서야 겨우 작은 받침대 하나가 완성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고등학생 둘째 언니에게 뜨개질을 처음 배웠다. 그때부터 내가 가지고 놀던 인형 옷을 짜서 만들어 입혔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틈만 나면 뭐든지 짰다. 자잘한 소품을 비롯해서 온갖 옷이며 커버를 만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어했다.
그 하나를 완성했을 때의 즐거움은 어디 비할 데 없이 크지만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물건은 값을 깎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고를 잘 알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구정 뜨개실로 짠 중국산 여름 볼레로를 샀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 일정한 패턴으로 곱게 잘 짠 옷인데 4만 원이 채 하지 않았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놀라서 한동안 올올이 짠 그 옷을 들여다보며, 얼굴도 모르는 중국 어느 아낙의 수고로움에 한참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종탑 위로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차분한 오렌지색 지붕이 오순도순 이마를 맞대고 모여있다.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좁은 지붕 위로 연신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사진 몇 장을 허겁지겁 찍고는 떠밀리듯 내려왔다.
자다르 해변은 생각 외로 조용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어도 좋다. 보트로 해변을 돌아보고 싶은데 승객이 없어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좀 늦은 시각이라 탈 사람들은 이미 낮동안 다 탔는지 쉽게 모이지 않는다.
매표하는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최소 4명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같이 나간 동행을 꼬드겨도 두 명은 더 있어야 한다.
매표대 앞에서 오고 가는 여행객 아무나 붙들고 호객행위(?)를 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대로 포기를 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온 여행자 한 분이 자기도 타겠다고 한다. 그래도 한 명이 더 있어야 해서 용기백배 더 열심히 호객행위를 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워서일까? 매표대 아가씨가 선장에게 가서 한참 동안 얘길 하더니 내게 다가왔다. 선장도 나의 모습을 보았는지 세 명만으로 배를 태워주겠다고 한단다. 뛸 듯이 기뻤다.
애쓰는 모습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도 그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다. 세 사람은 큰 배를 통으로 빌려 한동안 자다르 해변을 유유히 떠다녔다.
그렇게 만난 에나는 크로아티아에 친구를 만나러 온 간호사 출신의 미국인이다. 60이 되어 정년퇴직을 하고 여기저기 여행 중이라는 그녀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스포츠광이었다.
무릎에 길게 있는 상처도 래프팅을 하다가 난 거라는데 보기만 해도 그때의 사고가 얼마나 끔찍했을지 전해지는 듯한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리키며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몇 년 전, 그와 사별을 하고는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환갑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활동적인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과하지 않은 조용한 성품이다.
자다르의 석양을 보고 나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함께 간 동행이 아무래도 불편해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럴 때는 솔로 여행의 자유로움이 간절해진다. 이후 메일을 통해 그녀의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미국에 여행 오면 꼭 연락을 하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자다르 해변은 거창하게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다.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중년 아저씨들의 멋진 중창이 해 질 녘 자다르 해변에 퍼진다.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있어도 그만, 가만히 있어도 노랫소리가 찾아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해가 서서히 제 몸을 숨기려 할 즈음, 젊은 청년이 물 위에서 줄타기를 한다. 처음 보는 풍경이라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든다. 떨어질 듯 말 듯하면서도 그는 무사히 외줄을 잘 건너간다. 보는 나도 줄꾼이 되어 발가락 끝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줄 타기의 줄을 거둘 즈음 반대편 하늘에는 석양이 길게 누울 준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건가? 석양은 얼굴을 붉히며 서서히 구름 뒤로 숨어든다. 모두 말없이 눈으로 노을을 따라간다.
자다르의 하루가 일몰과 함께 흘러간다. 내 생의 또 하루도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