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3) 물보다 사람!
라스토케와 슬루니에서......
2016. 05. 31.
크로아티아 라스토케와 슬루니에서
물의 도시 라스토케로 들어왔다. 자자한 명성에 비해 나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곳이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으로 생선요리를 시켜놓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사색이 되어 모토분 숙소에 휴대폰을 놓고 왔다고 한다.
몇 시간 차를 타고 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부랴부랴 숙소에 전화를 했다. 마침 호스트도 청소 중에 놓고 간 휴대폰을 확인해서 갖고 있다고 한다. 안전하게 며칠 뒤에 도착할 두브로브니크 숙소로 좀 보내달라고 하고, 두브로브니크 숙소에는 전화기가 오면 잘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전화기를 놓고 온 일행은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녀는 나로부터 뭔가 확신을 듣고 싶어 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여행 가이드도 참 힘든 직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점심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무엇보다 장화 화분이 제일 마음이 간다. 낡았거나 떨어진 신발이 있으면 잽싸게 버리기 바쁜데 곳곳에 신발을 활용해서 만들어 놓은 화분이 눈길을 끈다.
그 아이디어가 신선하기도 하지만 일일이 손으로 가꾼 사람의 정성이 참으로 세심하다. 화분 장화를 한 번 신어보았다. 깜쪽같이 그럴싸하다.
그곳에서 나와 라스토케 다운타운(?)에 차를 세워 놓고 소박한 주택가를 둘러보았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보이는 정원에 꽃들이 만발하다. 너무 예뻐서 문 밖에서 연신 예쁘다는 소리만 내고 있으니 집주인이 들어와서 구경을 하라고 한다.
그 집은 상당히 넓은 정원에 갖가지 유실수와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인 내외가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까지 불러 통역을 해가며 긴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극진한 설명을 해준다. 갑자기 숙소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족 모두가 친절하다.
후덕한 아저씨의 순한 눈웃음이 그의 성품이 어떻다고 내게 일러바친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되면 꼭 여기서 묵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언제쯤 다시 가 볼까 싶다.
숙소가 있는 슬루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내가 묵은 숙소에는 모녀 삼 대가 살고 있다. 호호 할머니인 친정어머니는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데 집안 일과 소소한 밭일을 맡아하시고, 호스트인 딸은 라스토케에서 햄버거 가게와 숙박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인 그녀 딸은 어머니를 도와 숙소를 찾는 외국 여행객들의 통역을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딸은 좀 더 큰 도시로 나가거나 외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이 적막한 시골집에 할머니와 어머니만 두고 나가고 싶어 하는 그녀의 입장이 이해는 되면서도 괜히 내가 허전하고 서운한 생각이 든다. 오지랖이 삼만리다.
2층에 짐을 정리해 놓고 밖에 나가보니 포도넝쿨을 지지대에 묶는 일을 할머니 혼자 하고 계셨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넝쿨을 묶을 때마다 동강동강 잘라 놓은 노끈을 집어드렸다.
어쩌다 단어 한 개나 두 개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말로 하는 대화는 한계가 있어 오래 할 수 없다. 한동안 할머니는 말없이 포도넝쿨을 묶었고, 나는 하나씩 끈을 건네주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하시다가 할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직접 담갔다는 진한 과일 주스를 커다란 유리컵 가득 따라주시며 나의 일당(?)을 넉넉히 쳐주신다. 주스만큼 진한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한참 포도넝쿨 묶는 일을 마치고 일행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해거름 녘에 집 주변을 돌아보니 할머니는 일하시는 동안 신으셨던 작업화(?)를 아무 데나 내동댕이 치듯 벗어놓고 집으로 들어가셨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단한 몸을 잠시 뉘이셨는지 그 후로도 한동안 기척이 없다.
할머니 도와줄 일도 없고 해서 숙소를 나서 동네 마실을 나갔다. 집이 띄엄띄엄 있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마을은 조용하다. 간간이 신나게 짖는 동네 개소리만 적막강산 같은 마을에 물이랑처럼 울려 퍼진다.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과 눈인사를 하고 길이 안내하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할아버지 두 분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문설주에서 빼꼼히 들여다보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내가 들어가도 전혀 개의치 않고 노래 두 어곡을 멋들어지게 더 불렀다.
탁자에는 와인과 소박한 안주가 놓여 있다. 노래를 마치자 그 집주인인지 한 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 내 몫의 와인 한 잔을 갖고 나온다. 못하는 술이지만 나도 흥에 겨워 건네주는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염치 불고하고 한동안 옆에 앉아 두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장단도 맞추었다가 어깨도 들썩였다가 했다. 어렸을 적 언니, 오빠 셋이서 틈만 나면 오빠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던 까마득한 기억이 할아버지 집 안 마당에 핀 장미처럼 붉게 떠오른다.
그렇게 한 시간쯤 부르고 나면 후련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할아버지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거하게 부르는 노래가 더할 나위 없는 피로회복제일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한참을 빠져나오도록 길게 이어진 두 분의 노래는 나를 오래오래 배웅해주었다.
저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세 모녀가 한 자리에 다 모여 있다. 남자들은 크로아티아 전쟁으로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여자 셋만 남아 지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크로아티아의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젊은 남자들은 주변 유럽 국가로 나가서 취업을 하기 때문에 슬루니 같은 시골에서는 젊은 남자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어딜 가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전쟁의 흔적은 여전히 크고 작은 흉터로 남아 그때의 아픔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그 날의 기억을 나무는 잊었을까? 야속할 만큼 초록이 싱그럽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할머니는 고단하셨는지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잠이 드셨다. 문득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난다. 내 어머니도 저렇게 내 몸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일 사이 없이 동동거리기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아직 어머니가 곁에 계셔서 좋겠어요"
대학생 딸을 통해 호스트에게 전했다.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삐져나오려고 한다.
곤히 주무시는 할머니의 잠을 깨울까 봐 조용조용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죽치고 있었다.
밖에는 슬루니의 밤도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