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2. 10.
교육원 구내식당 벽면에 대형 TV가 틀어져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다큐 방송인데 주인공이 아들과 비슷한 연령대라 마음이 더 쓰였던 것 같다. 밥 먹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그사이 주인공의 고충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른다.
그들은 10대에 만나 사랑을 했고, 아이가 생겨 결혼을 했다. 시부모님 농장에서 함께 생활하며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지만 이런저런 한계에 부딪히며 적응하는 중이었다.
여전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어린 아빠, 갑작스레 감당해야 하는 독박 육아도 힘든데 친구들과 지내려는 남편이 서운한 어린 엄마, 또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 무엇보다 어린 부부의 찬란한 나이가 야속했다.
부모로서 져야 할 책임에 눌려 10대, 20대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질 그들의 꿈이 많이 접혀 있었다. 저게 만약 내 일이라면, 내 아들 일이라면....... 과연 저들처럼 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꺼이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의 용기가 결코 작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3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왔다. 저녁을 먹고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교육원 구내식당에서 보았던 방송 생각이 났다. 아들도 그 내용을 접한 것 같다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네가 만약 그런 상황이면 어떨 것 같아?"
"아우! 생각도 못 하죠. 전 그럴 자신 없어요"
"그래.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도 그래"
살다 보면 그런 일이든 아니든 예기치 못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길 수 있는 일은 아닌데도 방송을 보지 않았으면 대학 1학년인 아들에게 그런 상황을 대입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콘돔 쓸 줄 알아?"
"네"
"어떻게 알아?"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웠어요"
"혹시 콘돔 필요 없어?"
"하하하...... 아직은 필요 없어요"
"필요하면 얘기해. 엄마가 사줄게"
"네.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요즘은 야광 콘돔도 있다던데? 알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야광으로 사 줄까?"
"하하하.... 아니에요"
"살다 보면 누구한테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지만, 네 인생의 주인은 너니까 엄마는 네가 주도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네. 저도 그러려고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끌려가야 한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렇겠죠"
넙죽넙죽 대답은 잘도 한다. 그날 저녁, 아들과 나는 콘돔으로 시작해서 인생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콘돔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거실에서 TV를 틀어놓고 빨래를 개고 있었다. 제목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초혼인 아들이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 결혼하겠다는 장면인데 아들의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노발대발이다. 주방에서 밥을 먹고 있던 큰 녀석이 대뜸 묻는다.
"어머니, 만약 제가 저런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
순간 머리가 찌릿하다. 저게 단순히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전기처럼 스친다. 겪고 싶지 않은 일중에 내가 예외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나는 예외일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젖어 있다.
"엄마는 너보다 먼저 살았고, 너보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 봤으니까 조언은 해줄 수 있겠지. 쉽지 않은 상황이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알려주겠지만 최종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
"그럼 제가 저런 결혼을 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게 너의 선택이라면 엄마도 받아들여야지. 대신 그 뒤에 따르는 책임도 네가 져야지. 엄마가 하란다고 하고, 말란다고 말 거야?"
"그건 아니죠"
"그러니까, 엄만 네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예측 가능한 상황에 대해 얘기는 해주겠지만, 그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네 몫이야"
".................."
"네 인생은 네가 꾸려가는 거야, 네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
"그렇긴 하죠"
당장에라도 녀석은 애 딸린 여친이라도 소개할 것처럼 진지하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나도 문득 생각에 잠긴다. 부모가 자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남들이 많이 간다고 그것이 반드시 행복한 길도 아니고, 나 혼자 간다고 해서 잘못된 길도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삶의 가치에 따라 다양한 값으로 살면 된다. 그럼에도 부모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대로만 살아지지 않는다. 자식이 울리는 삶의 진동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식과 결부된 일에 이율배반적이 되곤 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어린 부부는 이제 능숙한 부모가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겠지만, 그러기까지 부모는 어쩌면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재혼인 상대와 결혼하겠다는 자식을 반대하는 부모도, 부모라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파이고 마모되면서 어렵게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이처럼 자식은 다 자라서도 부모에게 끊이지 않는 화두다. 30여 년 자식과 함께 해보니 그 의미는 부모를 돌아보라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오로지 자식이기만 할 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던 부모의 심정을 내 자식 키우면서 그제야 헤아릴 수 있었다.
부모만 보았을 때 다 보지 못한 것을 자식을 통해 부모가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의 아픔을 보고서야 부모의 상처가 생각나고, 자식으로 인해 슬퍼보고서야 부모의 젖은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 속이 끝내 무너지고 나서 더 허물어졌을 부모 속을 떠올려 보지만, 이미 떠나고 없는 빈 하늘만 속절없이 바라보는 나는 자식이라서 참 어리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