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by 파란 해밀



2021. 02. 13.


주말에 작은 녀석이 다녀간 방에 정리할 게 없나 싶어 들어가 보았다.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미움받을 용기"

뭔가 불길한 생각이 훅 덮친다. 평소 녀석이 즐겨 읽던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오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대학 졸업 전에 모기업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꼭 가고 싶었던 분야의 공사는 낙방을 해서 많이 아쉬워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집에 왔다. 대학 4년 동안 공부하느라 떨어져 있다가 주말마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다음 주 녀석이 왔다. 저녁을 먹고 마무리를 하고 나니 9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거실에 녀석과 둘이 앉았다. 입사 1년차 새내기라 회사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번 주 네 방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던데"
"........."
"혹시 미움을 꼭 받아내야 할 이유라도 있어?"
"아니에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괜찮아. 엄마니까 얘기해도 돼"


한동안 머뭇거리던 녀석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함께 일을 하는 사수가 있는데 그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모든 일을 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입장이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임에도 매일 부대끼며 감당하기가 버겁다고 했다.

갓 입사한 아들에게 처리하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이것 좀 해"하고 시켜놓고, 물어보면 "넌 그것도 모르냐?" 하며 짜증을 내고, 그러다 실수라도 하면 득달같이 화를 내니까 자꾸 마음이 움츠러든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몰라서 물어보고, 물어보면 가르쳐주는 게 당연한 것 아냐?"
"근데 자꾸 짜증을 내고 화를 내요"
"아니 왜?"
"모르겠어요. 성격이 그런 건지......"
"그래서 어떻게 해? 일은 처리해야 하는데?"
"그래서 어떨 땐 다른 분한테 가서 여쭤보고 처리해요"
"그럼 그분은 잘 알려주셔?"
"네. 다른 분들은 다 친절하게 알려주시죠"




© dre0316, 출처 Unsplash



녀석이 느꼈을 고충이 어떨지 이해가 갔다. 하루에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직장 상사나 동료일 것이다. 그들과 모두 마음이 맞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은 괜찮지만 매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면 그것같이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더구나 갓 입사한 신입이라 안 맞는다고 상대를 외면할 수도 없고, 어쨌든 버텨내야 하는 입장에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6개월이 넘도록 녀석이 그런 상황인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게 미안했다.


"근데 왜 아무 얘기도 안 했어?"
"어머니 걱정하실까 봐 그랬죠"
"그래도 얘기하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사실 그동안 집에 왔다가 일요일 돌아가려면 감옥에 가는 것 같았어요"
"..........."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녀석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사람은 왜 그런 걸까?"
"잘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이 저를 보면 무훈씨 괜찮아? 무훈씨 힘들지? 무훈씨 어때? 하고 묻는 게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그동안 아들이 그렇게 힘든 줄 몰라서 엄마가 미안해"
"아니에요. 어차피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인데요"
"많이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얘기해. 뾰족한 답을 주진 못해도 때로는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할 때가 있잖아"
"네. 그럴게요. 어머니 죄송해요"
"아니야, 엄마가 미안하지. 그러라고 세상에 엄마가 있는 거야"
"........"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보자. 그래도 정 아니다 싶으면 개인적으로 그 사람과 얘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사석에서 진심을 다해 얘기를 하면 그 사람도 무슨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네. 저도 그래 볼까 생각 중이에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은 녀석을 살며시 안고 토닥여주었다. 일요일 저녁, 아들은 감옥 같다는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 codyengel, 출처 Unsplash



그 해 가을이 가기 전에 회식을 마친 자리에서 아들은 그에게 힘들게 속 얘기를 꺼냈다. 그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그의 짜증은 계속되었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젠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해요. "

정말 그의 짜증이 줄어든 건지, 아들에게 내성이 생겨서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들이 느끼는 강도가 조금 줄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은 마음에 두고 있던 분야의 공사로 이직을 계속 준비하고 있었고, 바라던 대로 그 해 겨울 이직을 했다. 그러기까지 사수의 역할(?)이 상당한 몫을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공사로 이직한 후에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혹시나 예전처럼 힘든 사수를 만나지 않을까였다.

집에 다니러 온 녀석이 말했다.

"그때 그분도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중간에 낀 자리라 매일 같이 쏟아지는 일처리에 마음은 바쁘고, 여유는 없고 하니까 그렇게 반응한 게 아닐까 싶어요"

새로 옮긴 곳에는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없으니 심적으로 평안하고,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녀석의 얼굴이 한층 편안해 보였다.



© _javardh_001, 출처 Unsplash



사는 동안 어찌 내내 이쁨만 받고, 칭찬만 받고 살 수 있을까? 아들은 미움을 받아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부당한 미움에 대응해 보겠다고도 했다. 미움을 처리하는 방법도 조금 익혔다. 녀석의 인생에서 제일 큰 고비를 맞은 인간관계이자 사회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아들은 어려운 숙제 한 문제를 끙끙대며 풀어갔다.


어쩌면 세상의 자식들 모두가 그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부모가 모르는 중에도,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게 제 인생을 개척하고 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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