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2. 22.
꼽아보니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큰 녀석이 군 입대하던 날 적어두었던 소회를 들추어 본다.
요즘 들어 녀석이 부쩍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아 맘에 걸린다. 연병장에 잠시 서 있는데도 발이 시리다는 놈을 겨울 한가운데 두고 왔다.
잘 다녀오라는 말에 눈도 맞추지 않고 녀석은 먼 하늘만 바라보며 "네"하고 대답을 했다. 참아왔던 마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인지, 워낙 무덤덤한 녀석이라 그런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굳이 눈을 맞추라고 하지 않았다. 왠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녀석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먼지 속으로 들어가는 무리에 녀석을 잃어버렸다. 같이 간 작은 녀석의 손을 잡고 연병장을 내려오면서 계집아이처럼 가느다란 둘째 녀석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얼마 있지도 않은 온기를 찾아 편치 않은 마음을 기대어 본다.
새벽에 부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 12시에 가까워질 즈음 의정부 306 보충대 근처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가 추천해 준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부대찌개 전문점인 것 같다. 안에는 나 같은 입영 가족들로 발디딜 틈 없이 바글바글하다. 새벽 4시에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녀석은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나오던 먹음직스러운 부대찌개를 생각하고 시켰는데 나온 것은 희멀건한 국물에 건더기가 듬성듬성 떠있는 요상한 찌개가 나왔다. 그나마 국물은 먹을만 했다. 덜어준 찌개가 아직 남았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녀석이 맛도 없는 햄과 소세지를 건져가기에 작은 녀석보다 더 많이 그것을 덜어주었다.
나는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녀석은 맛도 없는 찌개로 벌써 그릇을 다 비웠다. 한 그릇 더 먹으라니 그러겠단다. 평소 밥 한 공기면 충분한 녀석은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입대 시간이 가까워오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누르려는지 아무 말도 없이 큰 숟가락으로 밥을 욱여 넣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밥 두 공기를 먹인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인 것처럼 깨끗이 밥 공기를 비운 녀석이 고맙다.
식당을 나와 보충대까지 가는 길은 몹시 을씨년스러웠다. 멀리 눈앞에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데 보충대 주변은 마른 갈대만 서걱거렸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녀석의 분분한 마음에 무슨 말이 들릴까마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무빈아, 엄마도 살면서 때로 힘든 일이 생기면 이 말로 마음을 다 잡곤 했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길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꽤 괜찮은 이유가 한 가지쯤은 있단다"
그랬다. 살면서 어찌 힘든 상황이 없었을까? 고통도 즐기려 했다. 극한의 괴로움 속에도 아찔한 희열이 있었다. 아무리 큰 나무가 쓰러져도 끝닿는 데가 있다고 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처럼, 고통의 끝을 희망으로 품고 산적도 있었다.
녀석들도 그 방법을 빨리 찾아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성미가 그다지 급한 것도 아닌데 대신 찾아 주고 싶은 마음이 설레발이 친다.
연병장에 들어서니 입영 안내서가 눈에 띄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는 당부에 정말 아무것도 갖고 가지 않았다. 반드시 지참해야 할 주민등록증, 나라사랑카드, 운전면허증 사본, 입영통지서만 챙겼다.
오는 길에 괜찮을까 의심하며 군화 깔창과 1회용 밴드를 샀다. 그것도 들고 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안내서에는 귀마개도 PX에서 살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추위를 타는 녀석이 걱정되어 물어보니 아무래도 추위가 자신이 없는지 귀마개를 사 달란다.
오는 길에 버스에서 팔던 군화 깔창도 마다하지 않더니, 행군 때 붙일 1회용 밴드를 사는데도 말리지 않는다. 두 통에 만 원 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 마음을 팔아먹는 것 같아 씁쓸했지만 그냥 샀다. 얼마 전 TV에서 행군을 하다 살갗이 벗겨진 어느 훈련병의 발이 떠올라서였다.
행군을 가기 전에 발가락마다 죄다 붙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녀석이 못 미더워 몇 번을 더 못을 박았다. 만 원이나 주고 산 밴드가 있는데도 맨 양말만 신고 탈래탈래 소풍 가듯 나설 놈 같아서 사물함에 잠재우지 말고 꼭 붙이고 가라고 몇 번을 더 일러주었다.
시간이 남아 홍보관이라고 되어 있는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홍보관이란 말이 무색했다. 마치 오래된 시골 동네 사진관 같다.
옛날 옛적 군부대 사진을 시작으로 듬성듬성 패널로 만들어 걸어놓은 사진은 언제 적 것인지 색이 희끗희끗 바래 있었다. 신병에게 나눠줄 군복, 군화, 모자, 양말, 소모용품들이 유리관 안에 마네킹처럼 누워 있다. 선을 벗어나 삐뚤빼뚤한 군복 재봉선이 녀석의 마음 같아 오랫동안 바라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옆에는 어느 장병과 어머니의 도덕 교과서 같은 편지가 견본으로 붙어 있다. 훌륭한 국군이 되겠다는 아들과, 나라를 지키는 멋진 군인이 되라는 어머니의 글이다. 군부대에서 좋아할 매우 건전하고 바람직한 내용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그냥 빙긋 웃고 말았다.
내 맘은 저 어미 마음이 아닌데, 녀석은 저 장병과 같은 마음일까? 잠시 생각하다 전시관을 빠져나왔다. 홍보관 앞에 있는 생활관과 보급 창고라고 적혀 있는 출입문에는 소불알만 한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다. 요즘도 저런 문짝이 있나 싶을 만큼 너덜너덜한 낡은 나무 문을 보고 있으려니, 참았던 서글픔이 그 문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홍보관을 나와 셋이서 찍은 사진이 없어 가까이 있는 여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미적미적하며 굳이 사양을 한다. 속으로 '참 별일이네' 하며 옆을 보았더니 그녀의 어머니가 벌써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두세 걸음 떨어져 있던 그 집 아들로 보이는 까까머리 총각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다. 사진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주고 가는 모습이 우리 집 큰 녀석과는 다르게 여린 배처럼 참 살갑게도 생겼다. 저런 아들을 군대 보내려니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찌 아리지 않을까 싶다.
연병장으로 내려와 식을 기다렸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다 해도 그저 판에 박힌 말뿐이라 가만히 있었다. 네가 제대할 때까지 이사 가지 않을 테니 아무 걱정 말라는 실없는 소리만 했다. 여느 때처럼 녀석이 해맑게 웃는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한기가 들어 녀석의 등에 얼굴을 가만히 갖다 대자 금방 따뜻해온다.
식순에 진짜 사나이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기에
"저 노래 몰라?" 했더니
"알아요"
하며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나도 같이 부르려 했지만 목이 잠겨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 진짜 사나이가 되어서 와라'
속으로 이야기했다. 웅웅거리는 마이크 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어디론가 들어가라는 것 같았다. 잘 갔다 오라는 말에 "네" 하고 만다. 그렇게 녀석은 언제나 단답형이다. 문자를 보내도, 묻는 말에 대답을 해도 결코 길게 하지 않는다. 참 무던한 녀석이다. 인상을 찡그리거나 성질 한 번 펴 본 적이 없다.
사춘기 때, 사고의 방황으로 한때 힘들어한 적이 있었지만 참으로 어진 녀석이다. 뭘 시키면 마다하지 않고, "제가 할게요" "제가 하면 되지요" 무엇이든 늘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던 녀석의 심성이 연한 홍시처럼 보드랍다. 그러던 녀석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모래 먼지에 묻혀 사라졌다. 그렇게 아들을 보냈다.
내려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감자떡 몇 개를 샀다. 한 입 베어 무는데 입안에서 돌이 된다. 한동안 그것을 입에 넣고 있다 몰래 뱉었다. 옆에 앉은 작은 녀석이 더 먹으라고 권하는데 차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중에 먹겠다고 손으로 답을 했다.
창밖에도, 감자떡에도 빨간 노을과 함께 큰 녀석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녀석으로 등록된 핸드폰 단축번호 3번을 눌러보았다. 신호음이 한 번도 가지 않고 곧바로 고객의 요청에 의해 일시 정지된 번호라며 떠들어댄다. 정지된 줄 알면서 핸드폰 컬러링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저녁은 먹었느냐는 문자를 넣어 보았다. 단답형으로 오던 녀석의 아쉬운 답글조차 이제는 없다.
다른 차량보다 일찍 올라와서 일찍 내려간다는 버스기사의 너스레가 한참 있었다.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아저씨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고속도로 공사의 일화를 들려주는데 승객 중 어느 누구도 반응이 없어 미안했다. 성대모사를 꽤 잘했는데 아마 다른 부모들도 나처럼 선뜻 호응해 줄 기분이 아니었나 보다. 그 버스가 군 입대 수송차량이 아니라 관광버스였더라면 버스기사의 그럴싸한 성대모사에 다들 뜨겁게 호응했을 것이다.
저녁 7시가 조금 지나 부산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했는데 차 안에서 연신 문자를 주고받던 작은 녀석이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한다. 허전함과 서운한 투정이 삐져나오려는 것을 꾹 삼켰다.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하다 표지판에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가 있어 버스를 타기로 했다. 큰 녀석이 종종 타던 버스다. 퇴근길에 이따금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보면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이라 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올 때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도착한 버스는 승객을 토해내고 속을 비웠다. 혹시라도 녀석의 흔적이 있을까 텅 빈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쯤 앉아 갔을까? mP3을 들으며 갔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왔을까? 엄마 전화를 버스 안에서 받느라 곤란하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버스가 지나는 곳마다 녀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녀석이 딛고 갔을 자리마다 발 도장을 찍으며 내렸다.
집에 도착하고도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게 잠시 망설여졌다. 집어삼킬 것 같은 적막보다 남아있는 녀석의 체취가 먼저 달려와 나를 에워싼다. 일부러 녀석의 방은 보지도 않고 TV 볼륨을 있는 대로 올렸다. 그래도 시선이 자꾸 녀석이 앉았던 책상으로 끌려간다. 드라마에서 떠들어대는 대사를 달달 외우기라도 할 것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저녁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인지 뜬 눈으로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음 날 아침, 녀석의 텅 빈 방이 출근하는 나를 배웅한다.
"무빈아, 잘 있지? 그래도 하루가 갔네?"
전하지도 못하는 위로가 빈 방에 메아리치다 담뱃재처럼 하얗게 까부라진다. 집을 나서며 손가락 하나를 꼽아 날짜를 세어 보았다. 나머지 손가락으로도 다 세지 못하는 남은 날이 셈을 못하는 까막눈처럼 섧다.
매일같이 가던 출근길이 밤새 누군가 쓸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휑하다. 타박타박 걷는 발걸음을 내려 보다 문득 뾰족한 신발 코에 마음이 찔린다.
꼽을 날도 없이 자식을 먼저 보내고 가슴에 묻은 어느 어미의 애끓는 오열 앞에, 새내기 군바리 어미의 헛헛한 마음이 염치없는 응석 같아서 빈 그물 걷어내듯 조금씩 조금씩 거두어들인다. 몰래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토닥토닥 두꺼비집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