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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Feb 24. 2021

부모의 되돌이표



2021. 02. 24.


작은 녀석은 대학 졸업 전에 수월하게 취업을 한데 반해 큰 녀석은 졸업한 해 11월에 했다.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니 취업을 준비하는 녀석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한동안 마음을 놓지 못했다. 

큰 녀석은 졸업 후 거의 집 안에만 있었다. 세세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나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부담을 줄까 봐 아는 척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나보다 녀석이 더 조바심치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졸업한 지 6개월이 될 즈음이 입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집안에만 있는 것 같아 저 상태로 굳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어 슬며시 물어보고도 싶었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불치병 같은 사춘기(?)로 나는 20대 초반에도 거의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박힌 끝도 없는 생각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일일이 내 속을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속도 나만큼이나 깜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닦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슬그머니 용돈을 쥐어주셨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부모라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들의 6개월 칩거를 보면서 그제야 엄마의 무한한 인내를 절감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의 겉모습만 보고 잔소리를 하셨다면 나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튀었을까? 엄마를 생각하며 아들을 삼켰다. 엄마는 단 한 번의 지청구도 없이 2년 동안 나를 기다려주셨는데, 겨우 반년이 무엇이라고 기다리지 못하겠나 싶어 녀석의 무거운 어깨를 바라보았다.

가을이 되어도 취업 소식은 감감했다. 한결같이 방에만 박혀 있는 녀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좀 더 활력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 florianklauer, 출처 Unsplash




"아들, 그동안 취업 준비 자료는 웬만큼 다 정리가 되었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준비하는 건 어때?"
" 제가 지금 돈이 꼭 필요하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다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했을 때 면접 보러 오라는 데가 몇 군데 있었는데,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아 못 간 적이 있었거든요"
"왜? 그게 잘 안돼?"
"네, 제가 빠지려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 되는데 급하게 구해지지 않으니까 못 간 적이 몇 번 있었어요"
".............."
"그래서 일단 취업에만 전념하려고요. 그래야 언제든지 편하게 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엄마가 몰랐네. 미안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나는 엄마만큼 기다려 주지 못하고 기어이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들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는데 그를 믿지 못하고 은근히 몰아붙인 셈이 되었다. 미안했다. 고작 1년도 제대로 기다리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어느 날,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녀석이 제출한 이력서 내역을 보게 되었다. 수 십 통이다. 그 많은 이력서를 내어놓고 번번이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한 녀석이 받았을 실망의 무게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마음이 쪼그라든다.




© congerdesign, 출처 Pixabay




자식을 키우다 보면 그 위에 자꾸 오래 전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한 걸음 떨어져서 그런 나를 바라보면 기억조차 없는 부모 심정이 소롯이 되살아난다. 이래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자식은 내가 미처 모르고 외면했던 부모 마음 구석구석을 훑게 한다. 그러라고 자식을 낳는 게 어쩌면 세상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통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엄마의 그 무한한 이해가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통해 부모가 자라는 것이 천 번도, 만 번도 맞는 소리인 것 같다. 두 아들이 뽀독뽀독 자랄 때 나도 그만큼 뽀독뽀독 함께 자란 것 같다. 

어쩌면 자식은 부모의 되돌이표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서툴고 미숙해서 놓치기도 하지만 돌고 돌다보면 차츰 제자리를 알아가는 그것처럼. 내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지금은 까맣게 모르는 어미의 심정을 제 자식 낳고 키우다보면 조금씩 알아가겠지........ 늦은 되돌이표를 반복하며 그제야 하나, 둘 짚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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