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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Feb 26. 2021

자식을 위해 때로는 얼굴도 판다?



2021. 02. 26.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때때로 아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 집 가까이 극장이 있어서 혼자서도 자주 가지만 장거리 연애를 하는 아들이 데이트 약속 없이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같이 가곤 한다. 영화 코드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그때그때 유연하게 선택을 한다.

좀 여유 있게 나선 날은 극장 근처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내가 영화표를 예매하면 아들이 커피를 산다. 자식이 돈을 버니 얻어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주말의 소확행이기도 하다.

그날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 상영까지 시간이 좀 남아 별다방에 들어갔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아들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바로 코앞이라 안 들으려고 해도 누구한테서 걸려온 전화인지 단 번에 알 수 있다.




© krisatomic, 출처 Unsplash




안 듣는 척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 통화를 하던 녀석이 다 마쳤는지 갑자기 사이에 놓인 테이블을 찍기 시작했다. 다 큰 사내 녀석이 여자애들처럼 이런 걸 찍어서 SNS에 올리려고 하는 건 아닐 텐데 속으로 별걸 다 찍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폼이 단순히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찍으려는 것 같지가 않았다. 몸을 최대한 뒤로 눕히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각도가 아무래도 나를 포함해서 찍으려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녀석의 움직임이 내 눈 안으로 다 들어왔다.

사진을 찍은 후에도 아들은 한동안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용무가 다 끝났는지 그제야 전화기를 테이블에 놓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야?"
"네"
"근데 뭘 찍었어?"
"하하..., 뭣 좀....."
"엄마를 왜 찍어?"
"하하하"




© ar130405, 출처 Pixabay




"왜 엄마 사진이 왜 필요했는지 얘기해 봐"
"여자 친구가 뭐 하냐고 해서 어머니랑 영화 보러 왔다고 하니까 정말이냐고 묻길래....."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래?"
"아뇨. 그냥 제가 찍어서 보냈어요"
"왜? 니가 말로 하면 안 믿어?"
"아니 그건 아닌데, 평소 어머니와 영화 보러 왔다고 하면 그러냐고 별다른 얘기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이냐고 묻길래 제가 찍어서 보냈어요"
"네가 평소에 믿음을 못 준 행동을 한 건 아니고?"
"아니에요"
"근데 왜 그래? 네가 믿음을 못 줬거나, 걔가 너를 못 믿거나 둘 중의 하나 아냐?"
"그렇지 않아요. 친구들도 어머니랑 영화 보러 갔다고 하면 잘 안 믿어요. 어머니랑 영화를 보러 가냐고 해요"
"왜? 엄마랑 아들이 같이 영화 보면 안 돼?"
"그러게요. 다들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자 친구도 그래서 물어본 것 같아요"
"........."
"평소에는 별말 없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좀 꽂혔었나 보죠"
"엄마와 아들이 함께 영화 보러 가는 걸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거리가 돼?"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주변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들도 있더라고요"
"어쨌든 그건 초상권 침해야.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꾹꾹 찍어서 보내면 돼?"
"하하하! 죄송합니다"
"김태희만 초상권 있는 거 아니야. 다음에는 콱! 신고한다~~~?"
"넵! 알겠습니다, 하하하!"




© angelekamp, 출처 Unsplash




다음 날, 출근해서 여자 후배들에게 남자 친구가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 건지 물어보았다. 의외로 "정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는 대답에 나도 적잖이 놀랬다. 환경이나 생각의 차이가 가끔은 어이없는 비약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의 결백(?)을 위해 때로는 얼굴도 팔아야 하는 것이 부모이고, 자신의 결백을 위해 서슴없이(?) 부모의 얼굴도 팔아먹는(?) 것이 자식인가 보다. 새끼에게 온몸을 내어주는 가시고기도 있는데 그에 비해 사진 한 장 찍힌 것쯤이야 무에 그리 대수랴 여기며, 아들의 결백이 그것으로 잘 해명되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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