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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Feb 27. 2021

지적질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2021. 02. 27.



아들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반 눈을 뜨거나 배에 힘을 주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어코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책상 위 똑같은 자리에 며칠씩 놓인 일회용 커피 컵, 아이스크림 봉지, 쓰고 버린 인공눈물 케이스, 맥주 캔...... 이것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널브러져 있는 게 보기 싫어 눈에 띌 때마다 말없이 치우곤 했다. 말끔하게 청소된 걸 보면 녀석도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들은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다니면서 번번히 치워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아 하루는 녀석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아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책상이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 게 네 눈에는 안 들어와?"
"네"
"정말?"
"넌, 이게 아무렇지도 않아?"
"네. 아무렇지 않은데요?"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아?"
"네"
"그럼 이걸 안 치우고 언제까지 놔둘 거야?"
"주말에 치울 거예요"
"왜? 주말까지 기다려야 돼?"
"당장 급하게 치우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깨끗하면 좋지 않아?"
"제 눈에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으니까요"
"너 그러다가 장가가서 소박맞기 딱 십상인데?"
"하하하! 그래서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나중에 네 색시한테서 "어머니 왜 아들을 이렇게 키우셨어요?" 하고 이런 소리 듣게 하는 거 아냐?"
"하하하. 그런 소리 안 듣게 해야죠"
"나는 나중에 아들 반품 들어와도 절대 안 받아준다?"
"넵"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책상 위에 몇 날 며칠이고 놓인 커피잔이 어찌 눈에 거슬리지 않는지, 힘든 것도 아니고 들고 날고 하는 길에 버릴 게 있으면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면 깔끔하고 좋을 것을 아들은 굳이 주말까지 그것들을 모셔놓고(?) 묵힌다.

널브러진 것들이 눈에 띌 때마다 달랑달랑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애써 참았다. 한참을 째려보다가 모질게 마음먹고 돌아선 게 몇 번인지 모른다. 녀석이 치우기로 한 주말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주말이 되자 녀석은 말한 대로 책상에 놓인 커피잔과 비닐봉지를 치웠다.


"주말이라서 드디어 치우는 거야?"
"네. 주말이니까 치워야죠"
"고마워~~~~. 그런데 그동안 그 방 드나들 때마다 엄마가 엄청 힘들었다는 것 알아?"
"하하하!"
"후딱 치워버리고 싶은 걸 아들 생각해서 겨우 참았어. 그러면 아들을 망치는 것 같아서"
"넵. 감사합니다"
"엄마를 생각해서 쓰레기 생길 때마다 달랑달랑 치우면 안 될까?"
"한 번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력이 꼭 필요한 거야?"
"네. 노력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래 한 번 노력해 봐. 같이 사는 집인데 너만 좋자고 하면 안 되지 않아?"
"넵. 알겠습니다"



© cherylholt, 출처 Pixabay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아들은 완벽하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듯 보였다. 주말이 아닌 날에도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었다. 


"어머, 아들~~~~~! 웬일이니? 주말도 아닌데~~~~~ 웬일이니?"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나의 오버액션에 녀석도 헤벌쭉 웃는다.

새 치약이나 샴푸를 꺼내 써도 다 쓴 통을 버리는 건 언제나 내 차지였는데 일부러 두고 지켜보았더니 하루는 빈 샴푸통을 버리려고 욕실에서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날은 거의 기절할 만큼 반색을 해주어야 한다.

"어머나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아들! 일취월장인데?"


아들은 사내 녀석이라 그런지, 무심해서 그런지 주변 상황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 무심함이 옆에 있는 사람을 서운하거나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러주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도 주변을 살피지 않는 녀석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제가 버리려고 하는 것만 버리지, 가는 길에 보이는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녀석의 그런 면을 몇 차례 있었지만 한동안 모른 척했다. 더 두고 보았으나 달라지지 않아 기어이 말을 꺼냈다.

"아들! 버리러 가는 김에 이것도 좀 버릴래?"
"아들! 버릴 때 네 것만 버리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고 버릴 게 있으면 같이 갖다 버리면 좋지 않을까?"



© willow_findlay, 출처 Unsplash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서 한 집에 사는 것이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격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서로 간에 배려도 필요하다. 맞지 않다고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를 낼 수도 없다. 매일 보아야 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양보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최대한 부드럽고 발랄한 어조로 얘기하려고 한다. 새콤한 유머를 고명처럼 곁들이면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아서 금상첨화다.

누구나 지적질(?)을 당해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설령 내 잘못이라 하더라도 쿨하게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꾸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거부한다기보다 어쩌면 그 이유를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기분 상해서 일을 그르치기 쉽다.

지적질(?)을 할 때는 상대가 자식이라도 말을 다듬고 기름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자식이 어리면 어린아이의 언어로, 다 자라서는 자란 대로 거기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행복하게 살아남기 위해 이 악물고 쓰레기도 참아내며 지적질에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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