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녀석이 떠났다. 현관에서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베란다로 나와 고개를 내밀고 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녀석은 몇 번을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나도 허리춤까지 몸을 빼고 손을 흔들었다.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점점 작아지는 녀석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켜보았으나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나도 어미이긴 한가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녀석이 방학에 집에 다녀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더니 그 무게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매한가지이다. 대단한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왔다 간 빈자리가 허전하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도리질을 쳤다.
어쩌면 그것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성일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인사이동이 있어도 떠난 사람의 부재가 한동안 나를 서먹하게 만드는 것처럼, 자식이다 보니 그보다 조금 더 한 것일 뿐 이내 나아지리라 여기며 가슴 언저리에 묻은 흙먼지를 털 듯 툭툭 털어본다.
휴가차 시댁을 갔다가 돌아올 때면 시어머니는 자주 눈물을 훔치셨다. 아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효자 아들을 곁에 오래 두지 못하고 또다시 헤어지는 것이 몹시 아쉬워서 그러셨을 것이다.
친정어머니도 미국에 살고 있는 오빠가 출장차 다니러 왔다가 집을 나설 때, 아들의 뒷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빈 길 위에서 한동안 장승처럼 움직이지 않으셨다.
철딱서니 없던 젊은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아들이 생사가 불안한 전쟁터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제 가면 다시 볼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어머니들은 자식과 헤어지는 것을 그토록 안타까워하셨는지......
오랜만에 작은 녀석이 집에 왔다. 작년 7월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8개월 만이다. 코로나 때문에 추석과 설도 건너뛰었는데 마침 부산 근처에 출장 올 일이 있어 일을 마치고 집에 들렀다. 대전에서 기차로 2시간이면 너끈히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이역만리 밖에 있는 것 같다.
신정이나 구정 전후로 떡국을 끓여 먹을 때마다 녀석 생각이 나곤 했다. 유달리 떡국을 좋아해서 녀석 없이 우리끼리 먹는 게 늘 맘에 걸렸다. 친정 언니가 직접 쌀을 갖고 가서 떡집에서 만들어 온 떡국을 일부러 남겨두었는데 오로지 녀석을 위해 떡국을 끓였다.
"위쪽에는 사골국물로 떡국을 끓이니까 느끼해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멸치 다시 국물 떡국이 생각났는데 역시 맛있네요"
냄비 바닥에 남을 국물도 없이 박박 긁어서 퍼 주었더니 녀석은 코를 박고 먹는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더니 뚝딱 먹고 비운 빈 그릇이 흐뭇하다.
이것저것 반찬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 이건 어떻게 만들어요?" "이것 만들 때 내가 봤어야 했는데....." 하며 퇴근하면 주부가 되는 처지 아니랄까 봐 조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도 하느라고 해도 아직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하는 녀석의 어설픈 솜씨인지라 그 관심이 못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