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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Jan 24. 2023

생태시 수업, 생그래 5

생태 시 수업의 좋은 점

지난 10월《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교육농 독서회 때였다. 올해 첫 학교 텃밭 농사를 시작한 터라, 학교 텃밭에 대해 나눌 게 별로 없었던 나는 대신,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생그래' 교육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독서회 선생님들이 궁금해하셔서 다음 11월 독서회 때 짧게 발표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나름 준비하다 보니, 긴 강의가 되었다. 풀씨께서 월간 교육농에 싣고 싶다고 내 강의를 원고로 정리해 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래 이야기는 거기에 덧붙여 고쳐 쓴 글이다.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좋은 점을 말하라면,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특히 6학년 같은 경우는 자기 얘기를 잘 안 하잖아요. 아이들은 시를 읽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저는 또 그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삶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생그래를 보면서 ‘이 아이한테 이런 면이 있었네.’ 하는 거죠. 저는 우리 반 일기 숙제를 안 내주거든요. 대신 학교에서 생그래를 해요. 생그래를 하면서 아이들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학년 김*연 학생의 생그래



앞의 시는 1학년 생그래에 나오는 윤동주의 <병아리>라는 시예요.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우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으로 다 들어갔지요”

이 시를 가지고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우리 보은 할아버지 집에도 병아리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지만 보고 싶습니다.


옛날 얘기를 꺼내 썼더라고요. 읽다가 마음이 따뜻해져서 사진을 찍어놨어요.  



1학년 김*경 학생의 생그래



이 시는 김금래 시인의 <난 빛덩어리>란 시인데 전에는 1학년 생그래에 넣었는데, 지금은 뺐어요. 생태시가 아닌 것 같아서. 작년 1학년 반 아이가 이렇게 적어놨네요. “나도 빛덩어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 학원 안 가면 되는 될까?” 이렇게 써 놓은 것이 귀여우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다음은 강기원 시인의 <쑥>이라는 시를 읽고 6학년 학생이 쓴 생그래입니다. 이 시는 1학년, 6학년 생그래에 모두 넣었습니다.


6학년 엄*주 학생의 생그래



글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우리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씩씩한 아이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항상 방학처럼 보내는 쑥이 부러워 다음 생에는 쑥으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썼네요.



같은 시를 가지고 다른 아이는 이렇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쑥이 뽑힌 자리 옆에 오브제처럼 큐브를 그려놨어요. 이 아이는 큐브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예요. 대부분의 그림에 큐브가 나와요.


6학년 김*롬 학생의 생그래




이 아이는 어렸을 때 호주에서 온 친구인데 6학년인데도 한글을 많이 틀려요. 그런데 자기 경험을 굉장히 많이 표현해요. 누구보다 더.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함민복의 시 <뻘>입니다. 함민복의 시가 교과서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의 생그래에도 함민복의 시들이 가장 많이 들어있습니다. 미술이 형태와 색을 통해, 음악이 목소리와 악기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면, 문학은, 특히 시는 언어를 통한 예술이라는 사실을 함민복 시를 읽을 때 깨닫곤 해요.   


 



 이 시를 가지고 6학년 아이가 이렇게 글을 썼어요.



6학년 김*은 학생의 생그래



아빠랑 모래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으로 썼는데, 이 아인 지금 가족 모두 함께 사는데, 사정이 있어 아빠랑 잠시 떨어져 있던 때가 있었어요.  아빠 얘기를 자주 쓰더라고요. 아련했어요.





말랑말랑한 힘


두 번째 좋은 점은 말랑말랑한 힘. 아이들의 그림이나 글을 볼 때, 뚱딴지같이 여겨질 때가 있어요. 저의 고정관념 때문이겠죠. 아이들은 유연하고 창의적이에요. 그래서 다양하게 해석해요. 그런 글을 읽을 때 참 재밌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두루두루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들이 있는데, 이 시도 그런 경우입니다.  





달랑 한 문장입니다.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되게 강렬했어요.

'이거 딱인걸?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외우겠다.'

역시나 많이 선택해요. 1학년, 6학년 모두.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가장 어려웠던 시가 이 시였다더군요.



1학년 조*원 학생의 생그래



위는 1학년 아이 작품이에요. 보는데 제가 힐링이 되었습니다. 잘 그렸죠?



온라인학급 게시판에 올린 6학년 김*재 학생의 생그래



이건 6학년 아이 작품인데, 눈을 조그마한 물고기로 표현해서 약육강식을 표현한 것 같아요. 이 친구는 항상 이런 내용의 글을 많이 써요. 기-승-전-약육강식.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다라고요. 이것도 이렇게 재밌는 해석을 했더라고요.


같은 시를 보고 이렇게도 그렸어요.

‘어떻게 물고기가 도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감탄했죠.



온라인학급 게시판에 올린 6학년 김*롬 학생의 생그래



다음은 이오덕 선생님의 <앵두> 시죠. 몰랑몰랑하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진실을 앵두 씨에 비유한.





그런데 제가 올해 되게 충격이었던 게, 이 시를 읽고 난 아이가 이렇게 표현한 그림이에요. 어찌 보면 잔혹 그림입니다.  



6학년 김*휼 학생의 생그래



아이들은 그 '야무진 진실'이 사람의 ‘이중인격’이래요. 내면에 이런 악마 같은 게 있다고. 이 시를 이렇게도 해석하는구나 신기했어요. 근데 이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다른 아이는 이렇게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6학년 김*은 학생의 생그래




그 단단한 씨는 2학기가 되니 나오는 아이들의 막말과 비속어래요. 참 다양하게 해석을 하는구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이 느끼는 생태시의 힘


세 번째 생태시의 힘. 아이들 설문할 때 한 문장씩 적어보라고 했어요. 시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제가 시의 힘에 대해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낸 게 아닐까.



구글 설문 결과



이중에 “어떠한 시를 외울 때 시가 갖고 있는 힘은 용기이다”, 이 말이 저는 멋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실 앞에 나와 친구들 앞에서 시를 읊어야 하니 ‘용기’가 필요하다고 아이가 적었겠구나 싶었어요.  그것도 시가 갖고 있는 힘이겠죠. 시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아이들한테 “생그래 시 외우기 발표회를  어느 정도 하는 게 좋을까?”도 물어봤어요.





무기명 설문이니까 분명히 한 5명 정도는 ‘안 하고 싶다’라는 솔직한 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명도 안 나왔어요. 분명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소개할 시입니다.





강기원 시인의 <제비꽃의 봄>을 6학년 아이는 6학년답게 시의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6학년 이 * 학생의 생그래



나도 우리 학교에 제비꽃을 많이 봤는데, 제비꽃이 작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있는 걸 보면 '제비꽃이 어지간히 힘이 센 게 아니구나. 이번 겨울에도 제비꽃이 겨울 거인과 싸울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1학년 아이 작품이에요. 1학년인데도, 시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아이의 생그래를 보면 놀랍습니다.  보랏빛 잔상으로 그린 제비꽃의 힘을 보세요.



1학년 이*호 학생의 생그래


목숨이라는 것은 아주 귀하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많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의 힘, 서경식, 현암사



서경식은 ‘시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어요. 제가 생태시 교육을 하는 것도


‘잘 보이지 않은 것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연약하고 작은 것들을 좀 잘 바라봐.’


라는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도 나름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살아가게 만드는 그러한 힘을 보여주며 말이죠. 그러고 보니 제가 생태 시 수업을 하는 것도 아이들과 텃밭 수업을 하는 것과 같은 목적이네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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