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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Apr 10. 2024

학교 텃밭은 누구 것일까


학교에 텃밭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학교라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날 저녁 마음을 추스르고 구글어스로 학교를 찾아보았다. 학교에 텃밭이 보이지 않았다.

'출근하게 되면, 샅샅이 둘러봐야지. 교육농 어떤 선생님은 주차장 보도블록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올려서 텃밭을 넓혀갔다는데... 나도 조그마한 땅뙈기 한두 평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6학년을 1 지망으로 지원했는데, 생각지 못했던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나와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3월이 지나가는 사이, 드디어 찾아냈다. 급식실 가는 길목 건물 옆에 숨어있던 조그마한 땅뙈기를.  


하루에 해가 서너 시간밖에 들지 않는 곳이지만, 감자, 고구마, 당근, 땅콩 같은 땅 속 열매 식물을 심으면 되겠지. 저 정도 넓이면, 우리 반뿐 아니라 옆 반 샘들하고도 같이 할 수 있겠다. 마침 운동장에서 일하고 계시던 반장님과 주무관님께 여쭤봤다.

"저 땅 한 두 평 정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 반 아이들하고 감자를 심고 싶어서요."

"뭘 심든 선생님 마음대로 심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학교 땅이니 교장, 교감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심어야지 않을까요?"

맞는 말씀이시다. 학교 관리자인 교감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교감 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며 얘기를 들으시는데, 옆에 있던 교무부장님이 대화에 끼어드셨다.

"그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거기에 다른 식물을 심어놨는데, 거길 사용하다니요."

"거기 옆에 심을 거예요. 빈 땅이 있던데요. 한두 평 정도면 충분해요."

"땅을 파헤친다고요? 누군가 무얼 심어놓은 그 자리에?"


'아. 니. 요. 그 옆 빈 땅이라니까요!'


결국 그 땅을 얻어내지 못했다. 교감 선생님은 한 해 더 두고 보자고 하셨다. 누군가 소중하게 심어놓은 식물인데, 그 식물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누군가는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 모를 식물들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도 관리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결국 텃밭 상자를 쓰기로 했다.  학교에서 쓰지 않던 열개 남짓한 긴 텃밭 상자들이 본관 건물 앞에 휑하니 일렬로 놓여 있다. 노지 텃밭에 비할 바 못되지만, 이것도 어디랴.

2022년 6학년 아이들과 함께 가꾼 학교 텃밭

작년까지 청소년단체 R.C.Y가 텃밭 프로그램을 했다는데, 올해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관상 좋지 않다며, 곧 머잖아 텃밭 상자들을 다 정리한다고 했다. 저 상자들을 구입할 땐, 하나에 최소 20~30만 원은 줬을 텐데.


그래, 올해는 텃밭 상자 농사다!

하남 하훼단지에서 지렁이 흙, 부숙토, 계분을 사다가 비율을 맞춰 흙을 만들었다. 발효되기까지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보름 전 반 아이들과 함께 수미감자, 보라감자를 심었고, 곧 콩도 심을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옆 반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싶다 하셨다. 그렇게 1학년 텃밭 농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텃밭 상자들이 몽땅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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