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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Dec 17. 2022

생태시 수업, 생그래 2

2. 왜 생태시였나

지난 10월《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교육농 독서회 때였다. 올해 첫 학교 텃밭 농사를 시작한 터라, 학교 텃밭에 대해 나눌 게 별로 없었던 나는 대신,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생그래' 교육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독서회 선생님들이 궁금해하셔서 다음 11월 독서회 때 짧게 발표하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나름 준비하다 보니, 긴 강의가 되었다. 풀씨께서 월간 교육농에 싣고 싶다고 내 강의를 원고로 정리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마련된 글이다.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왜 하필 생태시였냐 말씀드릴게요.

처음에는 윤동주 동시 동요로 1학년 한글교육을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코로나를 만나고 2021년에 1학년 아이들을 만났어요. 애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체험학습 등 아무 데도 못 가던 때 윤동주 동시 동요를 확장해서 생태시로 하는 한글 교육을 하기로 했죠. 엄마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이듬해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1학년 생태시 몇 편과 6학년에 맞는 생태시를 골라 올해 생태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생태시를 고를 때 그 기준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생태시 정의를 찾아보니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시”로서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생물학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옹호하며 공존의 법칙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는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라고 풀어내고 있어요.

이해는 되죠. 하지만 막상 시를 접할 때는 모호해지는 부분이 계속 생겼어요. 다음은 〈지렁이 일생〉라는 시입니다.                     


한평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좋은 땅 일구느라
수고한 지렁이

죽어서도 선뜻
선행의 끈 놓지 못합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

밭고랑 너머
개미네 집으로 실려 갑니다.

- 지렁이의 일생 전문, 안상순


이 시는 딱 봐도 생태시라는 확신이 들어요. 참 고마운 시죠.

그런데 다음 시는 어떤가요?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전문, 안도현

생태시 교육을 하기 전에도 6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시예요. 이 시를 외운 아이들도 여럿 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 엄격하게 봤을 때, 생태시가 아닌 시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가 좋으면 생태시라 생각하자, 그리고 진짜 생태시 같아 보이는 시들 사이에 살짝 끼워요.


김종철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다 생명을 다룬다”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며 빛이 보였어요. 좋은 시는 생명을 다룬다, 생태시가 아니더라도 좋은 시는 생명을 다루어야 한다는데,  굳이 생태시 소재들이 살아있는 생물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지, 진짜 생태시인지 그런 것 구분하는 게 중요할까? ‘생명력이 느껴지면 그냥 생태시로 구분하자’ 나름 나만의 정의가 생겼어요. 그래서 생명이 느껴지거나 생명을 다루고 있으면 생태시로 분류해 시 모음집에 넣었어요. 이원수의 〈달〉 같은 경우도 달이 주인공이고, 오리나무, 시냇물 이런 거는 시에서 그냥 부수적인 존재지만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집어넣었죠. 하지만 더 좋은 생태시를 많이 알게 된다면, 언젠가 이 시는 나의 생태시 목록에서 빠지겠죠.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냇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가며 조잘거리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은

- 달 전문, 이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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