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란 허공에다가 허상의 적을 상대로 주먹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늘 숨 가쁘게 무언가와 싸워왔다. 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하나 없었다. 나의 적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괴상한 짓만 골라서 하는 돈키호테와 바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 부단히도 내 안의 있는 것들과 싸워왔다. 나는 그저 살고 싶었다. 대충사는 것이 아니라, 목숨만 부지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그냥 그렇게. 누군가에겐 평범한 것이 나에게는 그다지도 어려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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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울증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연고 하나 없던 타지에서, 맞지 않는 옷 같던 학과를 다니면서 불면이 심해졌다. 무기력증에 펜 조차 잡을 수 없던 날들이 이어졌다. 친한 친구는 내 상태를 걱정하며 인근에 있던 도시의 정신병원을 추천해줬는데, 거기서 내가 우울한 상태이며 그로인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는 내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괴롭히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종용했으며, 내 인생의 단편적인 부분으로 나를 판단하고는 잠이 잘 오는 약과 함께 항정신병 약물 몇 개를 처방해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약과 처방은 나와 맞지 않았다. 약을 먹고 난 뒤, 나는 손발이 이상할 정도로 붓는 경험을 해야 했다.
퉁퉁 부은 손발로 걸어간 화장실에선, 거울 속 파리한 몰골을 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쳐 보였고 슬퍼 보였다.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남들에게 말해도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이었다. 부모님 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감정상태를 굳이 표현을 하자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 느낌’이다. 시작부터 그른 느낌이었다. 나는 우울했고 눈물이 났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정신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맑아져 왔다. 우울함이 눈물샘을 타고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멍한 느낌이었고 가슴 안이 공허했다.
세면대를 잡고 한참을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를 빠져나가는 방법에 대해서였다. 그러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목표가 명확해야 길을 잃어도 방향을 잊어버리진 않을 테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느끼는 역치까지만 슬퍼하고 싶었다. 딱 그만큼만 고통받고 싶었다. 그래서 세면대를 잡고 결론을 내린 날, 그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흉내를 내며 살아왔다.
동기들의 커리큘럼에 나를 맞췄다. 시험 기간이면 공부를 했고, 방학 때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여행을 다녔다. 졸업을 목전에 두던 때는 취직 준비를 했다. 가끔씩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내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맞춰 살아왔다.
나는 내 안에 자리한 감정의 부산물들을 외면하려, 나 자신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다음 화가 훤히 보이는 주말드라마와 같았다. 내가 원한 적 없는 삶을 살았기에 그만큼 더 빨리 지쳤다. 맞지 않는 옷은 숨통을 조인다는 걸, 두 번의 입사와 두 번의 퇴사를 통해 알게 됐다.
세면대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던 그 날, 내가 해야 했던 건 외면하는 법에 대해 골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나의 상처를 돌보지 않고 진피로 덮은 죄로 나는 한참이나 곪은 상태로 현재를 맞이하게 됐다. 남겨진 거라고는 토막 난 경력 두 개 뿐이다. 너무도 짧아 어디 가서 일을 해봤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허탈했다. 한 치 고민없이 닥치는 대로 사는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사는 것과 동일하다는 걸, 한참 뒤인 지금에서야 알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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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나는 무기력증에 좋다는 걸 다 해봤다. 필사도 해봤고, 비즈 공예도 해봤다. 책도 읽어봤고 산책도 다녀봤다. 고궁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 마음 속 한 가운데에 자리한 큰 호수는 여전히 잔잔했다. 일렁임 하나 없는 그 표면 속에서 나는 계속해 가라앉는 중이었다.
하루하루 보람과 성취를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글 같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워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내가 걱정된 것인지 룸메이트인 친한 언니가 내게 제안 하나를 했다. ‘런데이’라는 달리기 프로그램이 있으니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언니가 무슨 소리하는 거지 싶어 모른 척했다. 그러니 언니는 내게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겨 밖으로 데려갔다. 어플을 핸드폰에 다운로드 받아 주기까지 했다. 숨을 몰아쉴 정도로 뛰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뛰면 된다는 말에 반신반의를 하며 선정릉 공원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억지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내 주변에 있던 온갖 사물과 배경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따스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 맑은 여름 하늘과 내 발바닥으로 와 닿는 바닥. 내 의지로 움직이는 다리와 팔. 그리고 탁 트여 있던 시야. 뜀박질하며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생경하게 보였다. 처음 상경하던 때의 마음가짐이 되살아났다. 허파가 아팠으나 그 통증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왔다.
처음인 느낌이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세면대를 붙잡고 하던 ‘제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러닝이 끝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면서도 다음 날의 시작을 기대하게 됐다. 우스운 일이었으나 자꾸만 눈물이 났다.
런데이 어플은 그 날의 성취를 눈으로 보여주고, 출석표처럼 도장을 찍어준다. 다음 코스도 진행하게끔 사용자의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함이다. 1일차에 찍힌 도장을 보며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마음을 전부 서술할 수는 없으나, 하나 확실했던 건 내가 2일차 코스도 진행할 것이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현실이 너무 바쁘면 작은 일에 우울할 틈이 없다고. 나 역시도 그랬다. 몸을 바쁘게 하니 감정에 지는 일이 적어졌다. 우울함과 공허함을 운동으로 채웠다. 홈 트레이닝과 러닝을 반복하며, 나는 퇴사 이후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책을 읽었다. 방 청소를 자주했고 익숙하다고 모른 척하던 이 동네를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한강 근처를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하루가 확실히 달라졌다. 공허함과 우울함, 외로움이 뜀박질하는 발에 밟혀 작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딛고 더 나은 하루를 향해 달려갔다. 노을 지는 한강, 그 둘레를 뛰어다니며 내일을 꿈꿨다. 완주한 기록을 보며 내 안에 있을 가능성을 점쳤다. 성공하는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있을 달리기를 기대하는 중이다. 하지만 매일 이럴 수는 없을 걸 안다. 우울증은 감기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걸린 줄도 모르다가 눈치 챌 때가 되면 이미 나를 잔뜩 갉아먹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역병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냈다. 작은 성취를 쌓아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방접종을 맞아 면역을 키우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성취로 러닝을 택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감각을 참아내며 달려온 길이 내가 주어진 일을 꿋꿋하게 잘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한 감정들과 싸워가며 자존감과 자신감이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지 오래지만,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약속했다.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복제품처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베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건 하나의 거대한 다짐이다. 그저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지내진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살아갈 것이다. 하루 하루를 달려갈 것이다. 내 발걸음의 끝이 닿는 곳이 어디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끝이 세면대가 있을 화장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일도, 그 다음도 나는 한강변을 달릴 것이다. 노을이 지고 밤이 와도 내 안에 넘치는 생명력을 오래도록 곱씹을 것이다.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