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지 어연 한 달이 지났다.
잠을 자지 못한 이유를 꼽자면 단연 스마트폰이겠지만, 내게는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다음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걱정’이다. 이렇게 말하니 되게 거창한 걸 걱정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쫌생이이며 간장종지이다. 간장종지가 큰 바다를 담을 걸 걱정하는 걸 본 적 없듯, 나 역시도 미래 따위의 거창한 이유로 밤을 지새우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일 일찍 일어나지 못할 나 자신'이 걱정되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강박증세’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빈번하게 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 사람들에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 연구 결과도 그렇다. 규칙적으로, 깊게,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사람들이 기대 수명도 높다. 적게 자는 이들은 심마비와 뇌졸중이 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몇 배는 된다. 밤을 지새우는 건 오랜 시간동안 하는 자살행위와도 다름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나는 왜 마포대교 안전난간 위를 맨몸으로 걸어다니는 행위와도 같은 짓을 반복할까.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아주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강박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내일 하루 전체를 날려버릴 것 같은데…….”
피로에 피로가 쌓여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늦은 아침이, 잠이 오지 않아 침대 위를 뒤척거리다 결국에 유튜브 앱을 켜고 마는 새벽녘의 실수가 이런 생각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생각이 강박을 먹여 살린 탓이다. 덕분에 몸집을 불린 강박이 불면을 낳았다. 사소한 강박에서 모든 불행이 흘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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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니 의문이 들었다. 수면 싸이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학부생 시절엔 결단코 이런 적 없었다. 새벽에 잔 적도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초조함을 느끼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조금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온다. 학생 딱지를 떼고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출근 시간에 압박을 느끼면서부터 강박이 생겨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당시엔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빨리 잠들지 못 했으나, 아예 자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퇴사를 한 뒤 반년 후인 지금이 더 심한 느낌이다.
하루 걸러 이틀 연속으로 해를 보는 지경이 되니, 야매 의사가 되어 스스로를 진단하게 됐다. 내가 스스로에게 내려준 진단명은 ‘심신미약에 의한 강박증세’다. 발병 요인을 따지면, 장기 백수 생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취직이 어려워져 무직 상태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생산성 없는 하루하루에 초조함을 느끼는 중이다. 그랬더니 초조함 이 자식이 불안함이란 절친한 친구를 데려왔고, 불안함은 기다렸단 듯이 강박이란 또 다른 친구를 끌고왔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손에 손을 잡고 난입해 악순환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해보자면,
‘생산성 있는 하루를 만들어보겠답시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는 강박을 갖는다. 하지만 이른 기상을 시작으로 부지런하게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 탓에 심각한 초조함을 느끼게 됐다. 그덕에 저녁 시간까지 자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불안해한다. 심계항진에 잡생각까지 든다. 결국 자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고, 그대로 새벽녘을 지새워 아침 해를 본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겠지만, 불면증은 나를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또 다시 나를 원망하며, “안 되겠다. 오늘은 꼭 빨리 자야지.”라는 강박으로 오늘치 불면증 싸이클의 기틀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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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악순환의 굴레에 돌돌 말려 지낸지 한 달 째.
밤 새는 건 쉬워졌다 해도, 몸이 피곤하다며 보내는 반동 현상엔 여적 낯설다. 이명과 빛 번짐이 있을 때면 곧 죽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체 현상보다 더더욱 낯선 것은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얻는’, 지금과 같은 깨달음이다. 한 달 동안 잠을 다섯 시간도 안 되게 자면서 얻은 결론이 있다. 불면증은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질병이란 것이다.
마음이 편할 때엔 한 두 번 밤새는 것 정도야 그저 지나갈 해프닝 정도로 치부된다. 하지만 사람이 힘들고 지치면 생각회로 자체가 긍정적인 쪽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다음에 또 찾아올 새벽이 무서워지며 강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며, 밤을 새우는 주문마냥 잡생각들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결과적으론 부정적인 연쇄 작용이 이어지는 것이다. 유약한 마음이 불면을 불러오고, 불면이 더더욱 마음을 약하게 만들게 된다.
조상님들 말씀 중에 이런 게 있다. 몸 고생이 마음 고생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몸 고생은 마음 고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마음 고생은 대부분 몸 고생으로 이어진다. 불면증도 마음이 아파 몸이 겪는 고생 중 하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마음을 달래줘야 할까. 이 역시도 고민해봤지만 사실 여기엔 딱부러진 대답이 없다. 결론이 없어서 그렇다. 안다면 나의 불면증이 현재진행형일리 없을테니. 하지만 몇 가지 말할 수 있는 게 있긴 하다. 불면증을 잠시 고쳤을 때 도움이 됐던 것들이 있다.
1. 모든 일을 아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는 것
2. 수면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3. 취짐 2시간 전부터 전자기기 사용 금지
4.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 따뜻한 물로 하는 샤워
이 네 가지가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나도 오늘 밤 이것들로 다시 정상수면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마음이 유약해져 생긴 병이니만큼,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면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야하며, 그 외의 다른 생각은 해선 안 된다.
뻔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 같지만 원래 클래식이 베스트인 법이다. 나도 오늘 밤은 이 베스트 메뉴얼로 다시 잠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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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은 우리의 틈을 파고든다. 그리고는 스며든다. 낡은 생각과 눅눅한 마음을 갉아먹으며 기생하는 놈이니만큼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틈이 생겨 그 틈으로 들어왔다면 나갈 방도가 없게끔 틈을 메우자. 먹이를 주지 않도록 긍정적인 생각과 동시에 바른 생활 태도를 유지하자. 나도 오늘 밤엔 꼭 그렇게 살 예정이다.
2018년 기준 55만명을 넘어버린 동지들이 편안한 밤이 되길 기도함과 동시에, 나 역시도 건강한 수면을 위해 노력하겠노라 다짐하며 이번 글을 끝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