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시
막걸리가 좋아지던 무렵, 시를 읽었다.
노란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면
뽀얗고 구수한 한 자락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살살살 가슴을 어루만져주었다.
바짝 맺어진 멍울이
스르륵 풀리면 잠이 들었다.
시가 막걸리처럼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다.
시의 호흡이 적막하고 무례해서
인생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막걸리가 입안에 착 감기던 날
웅덩이에 힘이 빠진 미꾸라지를 길어올리듯
축 처진 시집을 꺼내 들었다.
시를 읽을 때마다
튕겨졌던 언어들이
맘속에 고이기 시작했다.
발끝으로 힘을 모아 살금살금 다가와
발가벗겨진 몸에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끝나지 않기를.
끝나지 않기를.
바닥에 주저앉아 가만가만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