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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Mar 09. 2024

우리의 눈길과 손길이 향할 곳은

그림책에서 배우는 시선과 마음의 방향 감각

『영이의 비닐우산』 윤동재 글 김재홍 그림, 창비 /『나는 개다』 백희나, 책읽는곰


시에는 그 밑바탕을 이루는 시적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 분위기는 비유와 상징을 품고 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요. 《영이의 비닐우산》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인 영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 이입돼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윤동재 시인의 시어를 그림으로 시각화한 김재홍 작가는 놀랍게도 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시점의 이동을 보여주며 우리의 눈과 마음이 다른 인물에게 몰입하게 합니다.


비 오는 아침, 거지 할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잠이 든 게 아니었습니다. "영감태기, 영감태기 뒈지지도 않고." 바쁜 아침 등굣길에 할아버지가 자기 가게 담벼락에 앉아 있다며 차갑고 뾰족한 말을 내뱉는 문방구 아주머니의 노기. 그것을 말없이 그저 묵묵히 받고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향하던 외부의 시선은 할아버지 자신의 시선으로 전환됩니다. 흙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에 스민 그림자, 우산을 들고 참방참방 조심조심 걸어오는 아이의 실루엣은 축축하게 젖은 자기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이 목석처럼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툭툭 건드리는 모습, 매정한 문방구 아주머니의 말, 할아버지 옆에 놓인 깡통에 빗물만 가득 고여 넘치는 걸 보며 마음이 쓰였던 영이는 아침 자습을 마치고 나와 자기의 비닐우산을 할아버지 머리 위에 살며시 씌워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학교로 총총히 달려가는 영이의 뒷모습을 할아버지는 다 보고 있었을 테고요. 하굣길에 비를 맞으며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이의 마음을 하늘도 알아주었는지 그날 오후 하늘은 말갛게 개였습니다. 그런데 아침 내내 비 오는 길바닥 위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할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는 건 영이가 준 비닐우산 하나뿐. 


앞뒤 면지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우산을 상황에 따라 손잡이가 아래로 가게 혹은 위로 가게 세워두지요. 아마 손잡이가 바닥으로 놓인다면 비가 오고 있기에 빗물이 우산에 들어가지 않게끔, 손잡이가 위로 가게 둔다면 비가 그친 후라서 우산을 세워 두기 위함일 테지요. 할아버지는 우산 안에 비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도록, 행여나 우산을 펼칠 영이의 머리 위로 빗물이 쏟아지는 일이 없도록, 손잡이를 아래로 단단히 받치고 꼿꼿이 세워두고 갔습니다. 자신에게로 향했던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렸을 할아버지 마음의 똑바른 방향감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 씀씀이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반면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나는 개다》는 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림은 개를 향하기도 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을 비추기도 하지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나요. 가족이 제각각의 일로 바쁜 일상 속 텅텅 빈 집을 홀로 지키는 동물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고요. 
쾅 굳게 닫힌 현관문만 바라보는 구슬이, 베란다에 엎드려 도돌이표 기다림 쏭을 읊조리는 구슬이, 가족이 그리워 하울링을 하는 구슬이, 산책을 나오자 금세 온 세상을 독차지해 버리는 구슬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구슬이의 시선과 거침없이 내달리는 구슬이를 따르는 시선은 마치 카메라 앵글이 움직이는 것 마냥 다이내믹한 유쾌함이 진동합니다. 


귀엽기도 하지만 손 많이 가는 존재, 똥오줌을 못 가리는 건 개나 아이나 다를 바 없겠지만 어른 인간은 동물에게 더 너그럽지 못한 편이지요. 응가 때문에 혼쭐이 나 베란다로 내쫓긴 구슬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사이, 똥싸개 동동이뿐이었네요. 엄마 젖을 떼자마자 동동이네로 보내진 구슬이와 엄마 없이 할머니, 아빠와 사는 다섯 살 동동이는 인생과 견생을 오가는 유대감이 끈끈합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나약한 동물과 어린 인간의 관계가 고스란히 온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이렇듯 두 그림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듯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 가지요. 어린이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존재를 보면 아이는 눈에 밟혀 마음이 쓰이나 봅니다. 참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요. 거기에 뭐 대단한 물질적 보탬이나 번지르르한 말은 필요치 않아 보이고요. 어쩌면 관심 어린 순한 행동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네들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배운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사회적 약자와 동물에게 시선을 주고 마음을 쓴다는 것에 대해 애정과 진심을 담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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